한국일보

산책길

2014-11-07 (금)
크게 작게
내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 자연을 잘 조화시킨 아름다운 공원 콜로니얼 팍이 있다. 캐널(수로)을 따라 줄지어 하늘을 가릴 만큼 큰 나무들 사이로 끝없이 뻗어나간 좁은 흙길은 나에게 평안을 주는 고요한 산책길이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숲속에 가득하고 목을 길게 빼고 느릿느릿 걷는 두루미와 꾸룩꾸룩 누군가를 부르는 두꺼비, 가끔 물위로 떠오르는 자라와 오리들이 헤엄치는 길고 좁은 강, 또한 빨간색 카누를 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정을 나누는 사람도 있는 이 작은 강가는 울창한 나무와 찔레꽃 향기로 봄여름을 장식한다.

가을에 이 길을 들어서면 황금빛 화려함에 눈이 감긴다. 신선한 산소가 가득 담긴 가을바람은 하나 둘 단풍잎을 날려 길을 덮는다. 낙엽을 밟고 걷기보다 그 위에 눕고 싶을 만큼 황홀하다.


지금은 여름이 고비를 넘어가는 때 장마후의 시원함이 상쾌하게 피부에 닿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 비취는 여름 햇살은 나뭇잎이 던지는 그늘과 어우러져 바람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나는 오늘도 오솔길 위에 가득히 내려앉은 눈부신 햇빛과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당신이 옆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 라고 하는 시를 읊으며 목청 높여 “오 쏠레미오”를 부르기도 한다. 로맨틱하게 둥그러진 나무다리를 넘어 로즈 가든을 지나면 풀숲에서 솟는 맑은 샘물이 모여 흐르는 도랑이 있다.
졸졸졸 물소리는 목마른 사슴을 부르기도 하고 언제나 나의 발길을 멈추게도 한다. 깡충 뛰면 넘을 수 있는 이 도랑이 오늘은 좀 넓어지고 물이 빠르게 흐른다.

어제 비가 온 탓 인가 보다. 그래서 높아진 물소리는 나의 귓가에서 고향의 물소리로 바뀐다. 꼬불꼬불 흐르는 도랑물은 잡초들과 태양빛에 물들어 색깔도 다양하다. 제법 큰 돌과 부딪칠 때면 하얀 거품이 되어 작은 폭포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곳에서 가재를 잡기도 하고 고무신을 들고 올챙이도 떠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 그리워한다. 도랑을 따라 우거진 숲과 잔 나무들 그리고 들꽃 사이로 구부러져 돌아 내려오는 맑은 물은 나에게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 놓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렇다. 구불구불 살아온 내 인생도 저 도랑물 같은 것이 아닐까! 인생은 눈물, 고뇌, 헛된 것이라고 슬퍼하지 말자. 내가 살아온 모든 것 흩어진 진주알 이라 해도 이제 하나 둘 꿰어서 색을 칠하자.

그리고 하얀 화판에 내 인생을 그리자. 고통스러웠던 시절은 파도에 부딪치는 이끼 낀 바위로, 행복했던 때는 화려한 정원의 꽃으로, 인내의 세월은 하늘이 담긴 깊고 푸른 호수로, 욕망과 노력은 높은 산으로, 꿈과 이상은 구름으로, 영광스러웠던 시절은 무지개로, 그리고 부채처럼 멋지게 늘어진 나무아래 빨간 모자를 쓰고 앉아 시를 쓰는 여자, ‘나’를 그리자. 그리고 아름답게 칠 하자.

시냇물아! 너는 졸졸 흘러서 강으로 가겠지. 나는 내가 그린 내 인생 화판을 들고 흘러 흘러 본향으로 가련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의 진주 목거리 걸고 말이다.

전미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