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가을날의 멋진 행사

2014-11-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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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 · 수필가>

지난 2014년 10월18일 테너플라이 미들 스쿨에 소재한 뉴저지 한국학교에서 한글날 568주년을 기념해서 실시한 미 동북부 제16회 글짓기 대회는 참 멋진 행사였다. 일명 백일장이라고 이름 하는 이 글짓기 대회의 기원은 고려 4대 광종 때의 과거제도가 아닐까 한다. 중국에서 귀환한 쌍기의 건의로 처음 실시되었던 이 과거제도는 당시에는 여러 호족과 공신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으로 시행 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베풀었던 시문을 짓는 시험으로 발전했고, 이 시험의 합격이 벼슬길에 오르는 관문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글(시문)을 짓는 일을 중요시 여기는 일은 우리나라 선인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앞을 다투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이곳의 대학에서도 에세이 실력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나라 대학들도 근래에 들어 논술고사를 실시하여 대학 입시생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번 대학 수학 (修學) 능력고사에 변별력이 부족하여 논술고사의 비중이 커졌다, 적어졌다 춤추는 일들은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이와 같이 글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데, 하물며 미국 땅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사용하는 우리 자녀들이 언제 우리말을 배워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말인가. 사실 글짓기 대회는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일인데 이렇게 시작한 이 글짓기 대회가 16년간이나 잘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요즈음 IT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디어 핸드폰 시대가 되어 학생들이 책을 읽기 싫어한다. 아니, 시간이 없다. 일기 쓰기나 편지 쓰기 같은 것은 아예 구세대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고, 각 신문사와 출판사들이 문을 닫으며, 심지어 New York Times까지 판매수가 줄어드는 판에 우리 아이들이 글쓰기도 당연히 저조해 질 수 밖에 없다. 글짓기를 지도하는 어떤 선생님 말에 의하면 바로 엊그제까지 6, 7명이 지원했다가 갑자기 2명이 대회를 포기해서 4명만 대회에 데리고 나왔다는 얘기를 하셨다.

마침내 글짓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올해의 글제는 세 개가 걸려 있다. ‘엄마의 부엌’ ‘편지’ 그리고 ‘독도사랑’. 셋 중에 하나를 골라서 쓰면 되고 ‘독도사랑’에서 잘 쓴 사람은 특별상을 타게 된다. ‘독도사랑’은 뉴욕한국 교육원에서 독도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도 동영상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유도하고자 특별상을 마련했다는 것이 다른 대회와 다른 점이었다.

이윽고 심사 결과 우수작품이 결정되었다. 특히 장원의 ‘엄마의 부엌’이 모든 가족의 부엌이 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낭독할 때는 듣고 있는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눈을 감으니, 과거의 기억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각 교장 선생님의 얼굴들, 이 행사를 멋있게 치렀던 사회자들, 교육원장들, 심사위원들, 끝까지 이 행사를 돕는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그동안의 글제들, 당선되어 뛸 듯이 기뻐하는 입상자들의 영상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생각들이 모두 기우였다는 것과 함께 뉴저지 한국학교의 글짓기 대회가 영원히 발전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이 이 가을 하늘에 아스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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