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의 꽃

2014-10-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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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 나그네가 노인과 소녀가 사는 집에 찾아와 물 한 그릇을 얻어 마셨다. 노인이 나그네의 지친 모습을 보고 쉬었다 가라고 하지만 나그네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난 줄곧 이렇게 걸었습니다. 나는 수없는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또 앞에서 재촉하며 날 부르는 소리가 있으니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앞에는 죽음이라오.” 소녀가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앞엔 백합과 들장미가 가득 피어 있어요. 전 늘 거기서 노는 걸요.”
우리도 이 나그네와 같이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인간의 생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한동안 IS참수 사건이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더니 이제는 또 에볼라가 우리의 삶을 공포로 몰고 있다.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에볼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에 침투했기 때문이다.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의사가 에볼라감염자로 판명되면서 뉴욕일대는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일대 소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입국한 후 다녔던 지하철과 바, 식당 등을 추적조사하고 관계시설을 폐쇄하는 등 난리법석인 가운데 이제 또 누가 에볼라에 감염될지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볼라는 현재 지구촌 전체에 1만 여명이 감염된 상태에서 벌써 사망자 수가 5,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괴한 질병은 과거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그 어떤 질병이나 테러, 전쟁, 쓰나미 같은 것도 대자연의 순리와 섭리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 숱한 난관과 어려움 속에서도 거뜬히 잘 견뎌왔다.

마치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우리의 삶도 대자연의 순환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다. 이제 우리를 괴롭히는 에볼라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 앞에는 어쩌지 못하고 곧 퇴치될 날이 올 것이다. 아무리 혹한의 엄동설한이라도 따뜻한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 영국시인 퍼시 셸리의 말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에 대한 불안감을 막기 위해 완치된 간호사와 포옹하고, 보건당국도 간호사 두 명의 에볼라완치 소식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의 공포감은 여전하다. 그러나 필요이상의 불안감은 금물이 아닐까. 불안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가뜩이나 힘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상인들은 에볼라 공포로 인한 매출감소를 염려하는 분위기다.

어차피 인명은 재천이고 인생은 진인사대천명이 아니던가! 이럴 때 오히려 세상을 넓게 보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하며 유머를 즐기면서 하다못해 조그마한 사물이라도 의미 있게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세상은 어둡지만 여전히 감탄할 것이 많고 가슴 벅찰 일도 많이 있다. 또 주위에는 얼마나 마음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가. 불안할 때 오히려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에볼라가 아무리 우리를 위협해도 우리 앞에는 여전히 백합과 들장미와 같은 아름다운 꽃들이 화사하게 우리를 맞아주지 않는가!
이해인 수녀가 암투병중에 쓴 시 ‘희망은 깨어있네’는 요즘처럼 불안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우리들 마음에 힘과 용기를 주고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해준다.

나는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해주는 군요/ 아직은 살아있는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희망은 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불러야만 오고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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