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색의 힘

2014-10-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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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 고 김수환 추기경은 머리로 생각한 사람이 가슴에 이르는데 7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마음으로 난 길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일,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길, 그대와 내가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이 바로 그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이 고백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의 마음을 어찌 간직해야 하는지 성찰해 보게 한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현대인은 온종일 손에서 폰을 놓지 않고 있다 하루를 마감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는 점점 생각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가파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의 지친 영혼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색이 필요하다. 사색은 사람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해주고 자연을 사랑하게 하며 이를 통한 현재의 충실함이 미래의 삶을 더 윤택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사색의 강점은 사색을 통해 사고하고 분별하다 보면 자기만의 뚜렷한 견해를 가질 수 있고 마음이나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점이다. 사색으로 삶의 방향을 확고히 해나간다면 자신은 물론, 공동체, 나아가서는 세상이 한결 편하고 살기 좋아질 것이다.

가을이면 싸늘한 바람 탓인가, 아니면 저무는 한 해가 아쉬워서인가……. 멋진 영화나 연극 한편이라도 감상하고 어디론가 좋은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가을에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부지런히 찾아 위대한 예술가들과 선조들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맑고 아름답게 정화하는 것도 일종의 사색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 빈센트 반 고흐나 눈과 귀가 먼 상태에서 ‘월광’ ‘비창’ ‘교향곡’ 같은 위대한 곡을 남긴 음악가 베토벤의 삶에서 훌륭한 교훈과 지혜를, 그리고 그들이 고통 속에 이룩한 발자취를 통해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어 보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향 내음속에 잠시 책에 함몰되는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자 사색의 계절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오색찬란하게 물드는 나뭇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볼라치면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있는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가을은 무엇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기에 제격이다. 나의 낡은 껍질을 깨고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독서삼매경에 한번 깊이 빠져 보자. 책에는 죽어있던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랑과 꿈, 희망과 지혜가 들어있다.

곡식이 무르익고 과일 풍성하고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 우리의 몸과 마음도 함께 풍요로워졌으면 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혼탁해도 우리들의 마음만은 사색을 통해 아름다운 국화꽃 같이 가을향기 그득했으면 한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제 발로 서라”고 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 바로 사색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말하기를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는 오직 지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 가능성은 바로 당신의 사색에 달려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누구나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생각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의 말처럼 우리는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다.

인생의 무상함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 고독을 이기지 못해 사랑을 갈망하게 되는 계절, 이 가을에 우리는 왜 사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 가 고민하면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 있는 생각을 이끌어내 몸과 영혼을 풍성하게 살찌워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것이 이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 아닐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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