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글이 건강한가?

2014-10-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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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저기 버스데이 케익이 있다. 누구의 생일일까?” 어린이들이 칠판에 붙여 놓은 그림 케익을 보고 떠든다. ‘한글’이라고 크게 판서를 한다. “사람이 아닌데...” “그럼, 누가 엄마지요?” “누가 아빠에요?” 질문이 이어진다. ‘세종대왕’이라고 또 크게 판서를 한다. “누구에요?” “한글은 몇 살이 되었어요?” 이번에는 케익 위에 숫자를 크게 쓴다. ‘568’. 어린이들이 서로 얼굴을 본다.

“우리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 누군가의 제안으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한글 생일 축하합니다.” 나중에 더 자세한 설명이 뒤를 따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한글날의 뜻을 전할 수 있다. 전하고 싶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 방법을 쉽게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이 ‘한글’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첫째 큰 글, 둘째 훌륭한 글, 셋째 하나 밖에 없는 글, 넷째 한국 고유의 글이라고 알려줄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한글을 사용하였나요?” 그들은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아니다. 한국에는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글자를 빌어 써 왔다. 1443년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에게 올바른 소리를 가르치기 위해 글자를 만드셨다. 한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것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할 수 있다.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재미있는 놀이가 있나요? 미국 핼로윈(Hallowen)처럼” 한참 신이 나서 핼로윈 준비를 하면서 질문을 한다. “그럼, 있고말고.”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그것을 알고 싶다는 기색이다. 연 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자 치기, 공기놀이, 땅뺏기 놀이, 수건돌리기……. 많은 놀이가 있다고 알린다. 학생들이 그것들을 놀아보고 싶은 얼굴이다. 그래, 언젠가 함께 놀아보자.

한국문화를 소개한다는 것은 이론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고, 체험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고, 생활화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공부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호기심을 채우는 일이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손이 닿는 곳에 있다. 우리들이 허공을 헤매기 때문에 생활과 유리된 다른 차원의 일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나, 세종대왕께 편지 쓰고 싶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쓰겠어요.” 이번에는 색색의 목소리가 합창을 한다. 종이를 받아든 어린이들이 편지 쓰는 동안 창밖을 내다본다. 창가에 단풍잎 하나가 살포시 앉아있다.

얼마동안 시간이 흐른 후, 학생들이 각자의 편지를 차례로 나와서 읽는다. 편지1, “나 세종대왕님 사랑해요. 한글도 사랑해요.” 편지2, “세종대왕님은 어떻게 e-mail시대가 오는 것을 아셨어요? 한글이 있어서 편리해요.”

편지3, “난 이 세상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쓰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어 주세요.” 편지4, “영어는 기본 자모가 26이에요. 한글은 기본 자모가 24이에요. 그렇지만 한글이 더 편리해요.” 편지5, “한글을 쓸 때, 쓰는 차례가 틀리다고 꾸중을 들어요. 그게 중요한 것인가요?”

편지6, “나는 한글하고 영자하고 섞어서 써요. An녕hase요? 재미있어요.” 편지7, “나는 세종대왕님 얼굴이 보고 싶어요. 우리 아빠하고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요.” 편지8, “나는 말과 글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영어를 많이 써요. 우리 엄마가 얼마 있으면, 여기 우리들의 한국말을 수입하게 될 거래요.” 편지10, “세종대왕님, 우리 학교에 구경 오세요. 우리들은 한국말과 한글 공부를 하고 있어요.”

가끔 놀라는 것은 어린이들 나름대로 판단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표현은 미숙하지만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 아빠는 영어를 잘 하시는데, 한국말이 나보다 서툴러요.” “ 저 칠판의 영어 spelling이 틀렸지만 괜찮아요. 한국어 선생님이니까.” 그래서 더 부끄럽게 느낀다.

결국 한글날은 각자의 한국어와 한글사용 능력을 반성하는 날이다. 그 정도가 건강한가, 불충분한가, 진행형인가, 정체상태인가, 희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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