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신 쫓기’

2014-10-20 (월)
크게 작게
연창흠(논설위원)

오늘날 귀신의 존재여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심령학적으로는 귀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와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입장은 여전히 ‘납득불가’다. 귀신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귀신이야기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한다. 귀신은 늘 사람들의 관심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옛날 지체 높은 선비조차 적잖이 귀신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말 국어사전에 보면 ‘귀신’은 죽은 사람의 넋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미신에서 사람에게 복과 저주를 준다는 신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적 문화배경에서 ‘귀신’이라고 하면 대부분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넋이 생시의 모습으로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고, 스산한 바람소리와 더불어 자기를 죽이거나 헤친 사람 앞에 홀연히 나타나 복수극을 벌이는 존재를 연상케 한다.

옛사람들은 모든 불행이 악귀(惡鬼), 역귀(疫鬼), 잡귀(雜鬼)와 같은 나쁜 귀신이 가져온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굿까지 대처방법도 다양했다. 궁궐에서도 연말에 악귀를 쫓기 위하여 섣달 그믐날 총을 쏘며, 각종 탈을 쓰고 북을 치면서 대궐 안을 두루 돌아다니기도 한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귀신 쫒기’ 세시풍속을 지냈다.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 길이가 가장 긴 날인 동지에는 팥죽을 먹지 않으면 귀신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늙고 잔병이 생겨 일 년 내내 몸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동지가 밤이 가장 길어 음의 기운이 가장 성해 음의 성질인 귀신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귀를 쫓기 위해 팥죽을 벽이나 문짝에 뿌리고 직접 팥죽을 먹으면서 재앙을 막고 복을 빌어주는 풍습을 지냈다. 이는 귀신은 양의 색인 붉은 색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팥죽으로 사귀의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설날에는 밤에 양광이라는 귀신이 마을에 들어와 신발을 신어본 뒤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어 그를 쫓아내는 풍습도 있었다. 신발을 잃어버리면 신발 주인은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여겨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 놓았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기도 했다.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신발 신어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보름 다음날(음력 1월16일)에는 일절 바깥출입을 삼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날 일을 하거나 남의 집에 가면 귀신이 붙어와 몸이 아프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의 날’인 이날은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놓거나 널뛰기, 윷놀이 등의 놀이를 하며 귀신을 쫓아냈다고 한다.

해마다 10월31일은 귀신분장을 하는 핼로윈데이(Halloween Day) 축제일이다. 이날 역시 ‘귀신 쫓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핼로윈 데이가 원래 기원전 500년께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인 삼하인 축제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켈트족의 새해 첫날은 11월1일인데, 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있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31일, 죽은 자들은 1년 동안 자신이 기거할 상대를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귀신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어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결국, 핼로윈데이의 귀신복장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귀신을 쫓기 위한 방어벽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에서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흥겨운 놀이를 하면서, 그리고 귀신복장으로 돌아다니는 축제 등을 즐기면서 귀신 쫓기를 했다. 이 같은 풍습은 귀신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건강한 음식’, ‘흥겨운 어울림’, ‘신명난 축제의 즐김’ 등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면 만사가 튼튼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는 31일은 핼로윈데이다. 가족 모두 귀신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며 ‘귀신 쫓기’가 아닌 ‘스트레스 쫓기’의 즐거움으로 하루를 보내면 좋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