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살은 우리사회의 문제

2014-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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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뉴욕한인회장)

먼저 지난 9월 고인이 되신 이종훈, 이성혜, 브라이언 리 가족의 명복을 빈다. 살아계신 분들에게는 먼 나라 일처럼 생각되는 자살이, 미국에서도 15분마다 한 명씩 발생하고 있다. 1년에 3만4,000명이 자살을 하는 꼴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자살은 늘어나는 추세이고 특히 10대 20대층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삶의 희망이었고 삶의 목표였다. 배고파 죽는 일 외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오늘의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자살하고, 나이든 사람,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도 자살을 한다.


하물며 타인의 삶에 희망을 주던 유명인들까지 자살을 한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웃어야 오래 산다고 강의하고 다니던 웃음전도사도 자살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고, 지난 8월에는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대중에게는 웃음을 선사했던 인기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자살에서 심각성은 연령과 사회적 계층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 이종훈씨 가족의 죽음을 맞아 뉴욕의 한인사회도 자살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이유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사회적 소외감을 주는 왕따 문화의 발전 현상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패거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문화, 이것은 한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일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한다.

둘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에 있어 철학의 변화이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죽음도 살아가는 많은 방법 중에 하나로 인식되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다. 현대인들은 죽음에 관한 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셋째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의 안착이다. 풍요한 가운데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지쳐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생에 있어 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의 여정을 통해 많은 어려운 벽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사는 것이 더 편할까? 죽는 것이 더 편할까? 자문하여 편한 쪽을 추구하게 된다면 쉽게 죽음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첫째, 누군가가 싫으면 나 혼자 싫어해야 할 것이다. 패거리를 만드는 사람은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죽음은 삶의 한 방편이 아닌 것을 인식해야 한다. 죽음은 맞서 싸워서 이겨내야 할 대상이다. 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염원이었고, 인류의 꿈인 사실을 새삼 인식해야 한다. 셋째, 삶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선이나, 죽음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선이 아닌 것을 인지해야 한다.

추가하자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의 성장과정과 치유방법에 대한 것을 누구나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어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되고, 저 사람은 어떤 정신질환이 있고, 어느 단계에 있는 지를 상식적으로 인지해, 서로 서로 자살을 예방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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