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임캡슐과 시간여행

2014-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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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지난 10월8일 뉴욕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 박물관은 100년 만에 타임캡슐을 개봉했다. 맨하탄의 기업인들이 1914년에 만들어 봉한 캡슐에는 기업인들의 주요 관심사였던 차와 커피, 향신료 교역에 대한 물품장부와 회계보고서 그리고 1914년 5월23일자 뉴욕타임스 1774년에 쓰인 편지사본과 사진 등이 들어있었다.

타임캡슐의 물품들은 잘 보관돼 하나같이 깨끗하고 상하지 않았다. 100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 인간의 수명을 100년에 비교하면 100년은 한 인생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시간보다는 조금 길다. 얼마 전 평생을 복음전도에 바치고 세상을 떠난 어느 성직자의 추모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분은 103년을 살았다.


그러나 보통은 90세 전후를 인생의 마지막으로 계산한다. 타임캡슐은 우리에게 시간여행을 갖게 해준다. 100년 전의 캡슐은 우리를 1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게 해준다. 시간여행을 갖게 해주는 것은 타임캡슐 뿐만은 아니다. 어릴 때 찍어 보관해 두었던 옛 사진들을 보아도 과거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감을 알게 된다.

시간여행이란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미래를 향하여 가는 것도 있다. 미래로 가는 것은 마음의 몫이다. 얼마 전 뉴욕 업스테이트 캣츠킬에서 캠프파이어를 한 적이 있다. 한 밤중 누워서 하늘을 보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너무도 밝은 별이었다. 이렇게 보는 별들이지만 수백만 년 전의 것들이다.

우리는 수백만 년 전의 별들과 함께 존재하는 우주의 일원이면서도 그걸 잊고 산다. 인생 100년에 모든 것을 걸며 산다. 그런데 어찌하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또 그렇게 살아야만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가끔은 시간여행을 하여 현재를 잊어봄은 어떨까.

우리의 뇌와 마음은 기억의 저장소이다. 지난시간을 언제든 꺼내어 과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 뇌와 마음이다. 또 미래를 연상하거나 꿈꾸어 보는 곳이 우리의 뇌와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항상 타임캡슐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좋은 것들만 캡슐에서 꺼내야 한다.

과거의 안 좋았던 추억들은 기억의 저장소, 즉 뇌와 마음의 캡슐에서 아예 꺼내질 말아야 한다. 밝고 맑았던 날들의 일들만 캡슐에서 들추어내어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생각대로 된다는 말이 있듯이 어둡고 침침한 날들의 미래는 조금이라도 연상치 말아야 한다.

타임캡슐 같은 벽화가 발견됐다. 10월9일 ‘네이처’지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연구팀의 논문을 실었다. 손을 벽에 대고 자국을 남기어 그려진 벽화를 인도네시아 동남부 술라웨시 섬의 마로스 동굴에서 발견한 내용과 사진이다.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이 벽화는 인간을 3만9900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준다. 대단하다.

2012년 5월21일 한국국가기록원은 15세기에서 16세기, 즉 약500년 전에 쓰인 조선시대 어느 부부의 연서(戀書)를 복원해 공개한 적이 있다. 편지는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 종중의 분묘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남편 나신걸의 부인 신창 맹씨 목관의 맹씨 머리맡에서 발견됐다. 타임캡슐의 시간여행 같은 일이다.

부부의 날을 맞아 발표된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이 편지의 시간여행을 통해 남녀 간 부부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로마를 보면 온 도시 전체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타임캡슐이 따로 없으나 로마가 2,000년 전 역사의 타임캡슐이다.

우리들 마음속의 타임캡슐은 100년이 아닌 수십억 년 전의 일(지구생성)을 생각하며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또 수억 년의 앞일을 상상하며 시간여행을 떠나게 한다. 오늘 타임캡슐을 봉해 1억년 후에 뜯는다면 인간과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맨하탄에서 뜯어진 100년 전 타임캡슐의 커피향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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