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드히’ 불교 사찰

2014-10-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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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윤 <교육가>


8년 전 내가 뉴저지 서섹스 카운티에 이사와 살게 된 이래로 이 광야 같은 산골짜기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일종의 취미처럼 되어 버렸다.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가장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수개월 전 이런 식의 모험을 하다가 눈앞에 다가온 간판이 ‘보드히 사찰’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는 언덕 위를 달려 학교처럼 생긴 넓은 단층 건물로 다가갔다. 거기에, 큼지막한 부처님의 좌상이 앉아 있었다. 위엄과 겸손을 함께 갖춘 부처의 풍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르침과 교화라기보다는 포용과 내적인 자기성찰이었다.


이곳은 내 집에서 6~7마일 거리에 있었으며 그 일대의 천연적 명소들을 알게 되었다. ‘Kittatinny Valley State Park’의 산림과 호수들, 특급 호텔권에 속하는 ‘Wooden Duck Bed & Breakfast’ 라마와 알파카를 키우는 농장, 이들을 거쳐 올라가면 이 불교사찰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일요일, 신도들이 모이는 시간에 맞추어 부처상을 향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멀리서 기다란 지팡이를 짚은 연약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중국말을 못하는 것을 눈치 채자, 긴 미소를 머금으며 “이리 와요”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건물로 갔다. 노인의 태도는 가볍고 투명하여, 마치 공기나 잡초, 부는 바람과도 같았다. 건물 안에는 불이 켜있지 않았다. 노인은 캄캄한 복도에 대고 소리쳐 누구를 불렀다. 즉시 두 젊은 승려들이 나타났다. 한 승려가 영어를 했다. 통역으로 노승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나, 어디서 살고 있나, 무슨 일을 하나 등을 물었다.

그러고는 불교에 관한 여러 영문 책자가 있는 방으로 안내하고 거기 있는 모든 책들은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미국 승려가 영어로 가르치는 시간이 있고 그 후 토요일 11시15분에는 언제나 무료 점심 식사가 있다고 했다.
그 후 젊은 승려에게 이 노인이 누구신가 물었더니, 약간 망설이며 말하기를 이 노인이 2000년에 이 사찰을 세운 87세의 대학자라고 말했다.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에 이 노승은 어두운 복도로 조용히 사라졌다.

6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나는 애견과 같이 백조네 가족이 넘나드는 갈라진 호수 곁에 있는 밤나무 밑에서 한 바구니 밤송이 수확을 거둔 후 보드히 사찰로 향했다.

그날 설법은 철학박사인 미국인 ‘비쿠 보드히’ 승려가 소박하고 예리한 설법을 했다. 그 분은 2000년 유엔에서 키노트 스피커(Keynote Speaker)를 했던 인물이다. 그 역시 바람같이 맑고 완력이 없었다. 11시15분분 성도들이 함께 만든 채식 점심은 절묘하고 깨끗했다. 이런 맛있는 채식을 두고 누가 고기를 찾겠단 말인가? 아아, 순간의 진리를 저버리지 말아야지. ‘이 순간이 다’라고 이분들은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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