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2014-10-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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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나 라커펠러 센터에 다들 한두 번 가보았을 것이다. 이 두 건물은 뉴욕의 상징물로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지난 121년 동안 전 세계 대통령이나 정부 수반, 재벌회장이나 유명 인사들이 머무르면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최고급 호텔이 19억5,000만 달러에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

이 호텔을 사들인 중국 안방(安邦)보험그룹의 창립자겸 회장은 덩샤오핑의 손녀사위 우샤오후라고 한다. 세계적 호텔업체인 힐튼 월드와이드는 양사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 100년 동안이 호텔을 경영하게 된다고 밝혔다. 왜 100년인가. 홍콩 조차(租借) 통치권 99년이 떠오른다.


1898년 영국이 청나라를 굴복시키면서 99년간 홍콩의 조차 통치권을 받아냈고 1997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다.농민출신 혁명가 덩샤오핑이 이루어낸 개방정책 중 하나가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 간에 체결한 중영공동선언이다. 이 조약에 따라 99년간의 조차를 마치는 홍콩에 대해 덩샤오핑은 향후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선거의 자유화를 주장하며 한창 우산혁명 중이다.

100년 후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어찌 될지 지금 살아있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미 부동산 전문가들은 헐값에 나올 때 다시 사들이면 된다고 낙관한다. 12월이 되면 그 유명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는 라커펠러 센터가 그랬다.
1989년 라커펠러 센터 빌딩군이 일본 미쓰비시사에 약 2,200억 엔에 넘어가며 미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 붕괴로 막대한 적자를 입고 파산하면서 다시 미국인 손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중국의 해외부동산 투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80년대 부동산 거품을 키운 일본과는 달리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입하며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드라이브에 불안을 느낀 중국 거물들이 미래를 위해 대규모 해외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지난 9월 14일에는 한국 제주도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의 40%이상이 중국인 소유로 드러나면서 한국사회에 이래도 되는가 하는 걱정이 일었다.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이 아시아든 아랍이든 다른 나라 사람의 소유가 되고 외국 자본 투자에 인적 교류,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사실, 건물이야 나중에 찾아도 되고 못 찾는다고 해도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미국 땅에 있지 중국 땅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가 하늘로 훌쩍 날아가 중국 옆에 붙는 것도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적 유산이다. 중국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을 정비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등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에 힘쓰고 있다. 실제로 지린성 지안(集安)시청광장에 세워진 삼족오상의 기단에는 ‘삼족오를 고구려와 중원민족이 공유하고 있으며 중원민족과 함께 고구려 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표현까지 새겼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우리 역사를 홀대해 온 탓이다.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학자와 관리들은 중국 역사와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19세기에 와서야 우리 역사에 눈 돌렸고 조선이 외세 앞에 굴복하기 직전에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같은 역사학자가 우리 역사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역사가 한족, 몽고족, 일본족과 공동소유는 아니다. 한국 역사로 되어진 것은 한국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민중을 잡는 것은 정신이요, 뜻이다. 주몽이 위대한 것은 민중에게 뜻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요, 고구려가 위대한 것은 그 민중이 위대한 국민적 이상에 가슴이 부풀고 타올랐기 때문이다. 고구려를 망하게 만든 것은 우리다. 우리가 버리면 동명도 단군도 개죽음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살리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날 수 있다. ”

지안의 고구려 유적 안내판에 잘못된 글이 올라가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적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역사란 과거의 것이요, 죽은 것 같지만 언제든지 살아서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표현이 새삼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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