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누구인줄 알아?”

2014-10-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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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내가 누구인줄 알아?”
한 여성 국회의원이 대리기사에게 명암을 건네주면서 매섭게 쏘아 붙인 말이다. 인격에 상처를 받은 대기기사가 머뭇거리며 항의하니까 일행과 합세하여 싸움판을 벌렸다. 국회의원다운 점잖음과 인격이 보이지 않는다.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 안에 허세가 잔뜩 묻어난다.

“내가 누구인 줄 알아?” 이 말은 다분히 공격적인 언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지도자의 품격은 살필 수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사업가는 소규모 점포 주인인데 명함에는 ‘OO기업 회장’이라고 황금색으로 박아 놓았다. 허세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어떤 목사의 명함을 받아 들고 기절 할 뻔 했다. 직함과 직위의 숫자가 20개도 넘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예박사 학위도 3개나 되었고, 무슨 선교회 회장 명칭도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요즘 외국 여행길에 명예박사 학위를 취득한 목사가 많다. 노회장, 총회장을 비롯하여 초교파 단체장 선거에 수억 또는 수십억이 살포된다. 한국은 이제 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북한 군인을 보라. 영관급만 되어도 앞가슴 전체를 가리는 훈장을 포도덩굴처럼 무겁게 달고 다닌다. 왜 그럴까. 허세다. 자기과장이다. 변변하게 내세울 것이 없으니까 화려한 철제 훈장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다.

진짜 최고는 광고하지 않는다. 허세도 물론 없다. 영락교회는 나의 모교회다. 한경직 목사가 주변 사람에게 명암을 돌리는 것을 본적이 없다. 자신감 없는 목사가 거의 이력서 수준으로 앞뒤를 빼곡하게 채운 명암을 돌린다.

호랑이는 자신을 과장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뭇짐승이 두려워 떤다. 이유가 무엇일까. 은밀성과 절제성 때문이다. 호랑이는 철저히 자신의 동선을 감추고 카파도키아 수도사처럼 신비롭게 산다. 호랑이의 기척은 항상 베일에 싸여있고, 감정은 늘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호랑이의 한 번의 포효에 뭇짐승이 두려워 떤다.
허세의 원인은 열등감이다.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낮은 자존감이 허세를 낳는다. 모든 허세의 뿌리는 자신의 존재를 과도하게 인정받고 보상받으려는 욕망에 깊숙이 뻗어 있다. 일종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이다.
그래서 허세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동안에는 뉘우침과 회개가 힘들다. 국회의원이 사과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정치적 신념이 올곧고 훌륭해서가 아니다. 허세와 허영이 그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허세와 허영을 경계하라. 어떤 경우에도 “매사의 조심성과 자제력”을 지켜내는 호랑이처럼 기품 있게 살라. 그렇지 못해 혹 실수했다면, 다윗처럼 속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새롭게 거듭 나라. 한국 사회는 이런 거품이 없는 리더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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