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의 바람, 화해의 물결

2014-10-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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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6.25전쟁후 우리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로부터 시레이션이나 우유, 초코렛 같은 것을 얻어먹고 좋아라 하며 은근히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가졌었다. 뭔가 우리와 다르게 어마어마한 문명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설레임 때문이었다.

이런 감정은 한때 일본의 밀수품이 한국에 반입돼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산이나 가방, 화장품 등 품질 좋은 일제산을 보면 왠지 부러움과 함께 일본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이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자유를 모르던 사람이 자유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의 문화, 문물 등을 접하게 되면 자연히 그들처럼 그것을 갖고 보고 즐기고 싶은 열망이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비교의식이 싹트면서 좋고 나쁘고를 비판하는 사고를 갖게 된다.


남한에서 북한을 향해 삐라를 살포하는 것도 자유가 억압되고 폐쇄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2,500만 북한 동족에게 자유로운 남한의 실상이 어떤 것인가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만큼 ‘자유’라는 것은 강력하다. 그것은 기존의 체제를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붕괴, 아랍권에서 민중의 힘에 의해 무너진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최근 중국정부가 홍콩 시민들의 우산혁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체재전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제 지구상에 분단 상태에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남북한 밖에 없다. 동족과 동족을 69년째 가로막은 분단의 벽을 무너뜨리고 같은 민족이 하나 되려면 자유에 억압된 채 살아가는 북한동족의 의식이 변화되도록 자유의 바람을 그곳에 불어넣어야 한다.

근래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모습이 한 달 째 보이지 않자 그의 신변에 대한 이상설이 난무하고 있다. 동시에 지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실세 3인방이 참석하고 정치권과 모임을 갖고 돌아가 북한의 체재가 곧 무너져 통일의 길이 열리는 건 아닌가 하는 발 빠른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북한같이 철통같은 체제는 한명의 지도자에게 이상이 생겼다고 붕괴되거나 와해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오히려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더 강력한 체재로 전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실세들이 역사 이래 판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한 상황은 깜짝 쇼든 호들갑이든 어디까지나 보기 좋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고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는 그런 날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 서로가 얼싸안고 함께 한자리에 앉아 현실을 진단하고 서로의 문제점을 토론하며 함께 미래를 지향해 나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순간의 장밋빛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날을 더 확실하게 오게 하려면 민간인의 하나 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동·서독은 역사적으로 통일 전에 서로 왕래하고 교신하면서 자연스레 서로를 막고 있는 장벽을 무너뜨려 통일의 꽃을 피웠다. 우리도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이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들과 자연스런 접촉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자유에 대한 갈망과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이 생기게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민간단체들의 순수한 취지의 인도적 동포애적 대북지원 사업이 더 활발할 때 가능하다. 농산물과 의약품 전달, 교량과 진료소, 빵공장, 체육관 등을 지어주고 북한에 계속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서로 접촉, 함께 동화되어 자유의 바람이 불고 화해의 물결이 넘치면 이것이 삐라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폐쇄된 사회,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빈곤 국가이면서 군사적으로 가장 도발의 위험성이 높은 나라다. 이곳에 우리의 잉여물과 기술 등을 보내 식량위기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심을 얻는 것이 곧 남북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고 도발의 위험을 방지하며 나아가서는 통일의 물꼬를 트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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