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4-10-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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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훈(사회1팀 기자)

지난달 24일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뉴욕밀알선교단을 방문했다. 제69차 유엔총회 기간 중 개최된 제7차 월드 포커스 온 어티즘 기조 연설자로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나 의원이 한인 장애인 봉사단체인 뉴욕밀알선교단을 찾는 일 자체는 사실 큰 뉴스거리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온 정치인이라면 으레 뉴욕의 한인 봉사단체 하나쯤은 살펴보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나 의원의 방문이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그 역시 다운증후군 딸을 둔 장애인 부모였기 때문이다.


이날 나 의원은 자신의 딸에 대한 인상적인 일화 하나를 전했다. 딸의 장애를 아는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책가방 챙기는 법, 운동화 끈 묶는 법까지 하나하나 도와주지만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나 의원의 딸만 남겨두고 쏜살같이 교실 문을 나선다는 것이었다. 나 의원은 “정작 딸이 필요한 것은 교문까지 함께 걸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문득 장애인 봉사단체 관련 기사에 관해 관계자들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사를 작성할 당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왠지 불편한 감이 있어 ‘장애우’로 바꿨던 적이 있다.

무의식중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비하의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 딴에는 보다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장애우’라는 단어를 쓴 것인데 결국 장애인 봉사단체 관계자 하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글을 쓴 의도는 충분히 짐작되지만 ‘장애우’라는 단어가 오히려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부자연스러운 배려에 장애인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 처음으로 깨달았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차별 없는 동등한 대우였다. 다시 말하자면 장애인 스스로들은 신체 활동과 일상생활에 다소 불편함을 느낄지라도 같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차별 없는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과도한 배려가 아닌, 또는 비하와 무시도 아닌, 동등함이 바탕이 된 자연스러운 관심과 배려가 진정 그들에게 필요하다.

얼마 전 만났던 한 장애인 봉사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인사회가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에 대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사회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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