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야 체험

2014-09-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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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목사>

광야 체험이란 허허벌판 광야를 여행하는 것 같은 모진 고생을 체험하는 것이다. 고생이 낙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고통의 광야를 체험해야 진정한 행복을 안다. 국내 어떤 청소년 단체는 젊은이들에게 ‘광야 체험’이란 프로그램을 개발 실시하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이다.

기원전 1,200년 경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 모세가 그들을 영도하여 애급에서 탈출하고 시내 광야를 40년 동안 배회하는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외적의 공격, 식량 결핍, 식수 부족, 동족의 불평불만 등 수 많은 난관과 싸우며 광야를 여행한다. 한 두 명도 아니다. 그 수가 60만 명이나 되는 광야의 행진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이런 민족적인 고통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왜 그랬을까?


여기에 대한 성경의 해석은 뚜렷하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근성에서 해방시키려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애급에서 오랜 세월을 노예로 살며 의존적이고 비굴한 인간상이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풀려나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광야의 고생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고한 자각심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셋째는 참 자유와 해방은 고통이라는 광야를 거쳐서 얻어진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광야교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나치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있을 때 신학자 헨리 크래머(Henry Kramer)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교인들이 밤중에 은밀히 목사관에 모였다. “목사님, 이런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크래머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의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를 대답하면 자연히 결정됩니다.”

교인들은 한 명 씩 자기가 누구인지를 고백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고백의 공통점은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단결하여 나치를 몰아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아 유명한 DRA(Dutch Resistance Movement-네덜란드인 항거운동)을 조직하여 독일군을 괴롭히고 연합군 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자의 위기는 위태할 위(危)와 기회 기(機), 곧 기회라는 두 개의 의미가 합쳐진 말이다. 위태롭기도 하나 그것은 동시에 발전과 쇄신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옛 동양철학이 담긴 말이다.

뉴욕에 사는 사람은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질 때 기뻐할 이유가 있다. 허드슨 강에 ‘쏠트 라인(Salt Line)이라는 것이 있다. 비가 안 오면 바닷물이 쏠트라인을 퍼킵시까지 밀어 올려 수원지를 위협한다. 비가 쏟아지면 민물의 저항력이 강해져서 쏠트라인을 바다 쪽으로 밀어낸다. 이 싸움은 하루도 빼지 않고 허드슨 강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가 와서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다. 뉴욕의 맛있는 수돗물을 위하여 빗물들이 저항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네트 없이 테니스를 치면 저항은 없지만 재미가 없을 것이다. 케이불커를 타는 것보다 비탈길이 있기에 등산의 의미가 있다. 쉽게 살겠다는 말은 재미없게 살겠다는 말과 별 차이가 없다.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에 꼭 필요한 두 가지 장비는 소망이라는 지팡이와 인내라는 신발이다.

야구에서 강타자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대개 스트라이크 아웃도 많이 당한다. 홈런 타자치고 타율이 높은 선수는 별로 없다. 베이브 루스(Babe Ruth)는 신화적인 홈런 타자로 714개의 홈런을 날렸는데 스트라이크 아웃도 1,330회나 당했다. 성공 뒤에는 실패가 있게 마련이다. 아니 실패가 있었기에 성공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는 스승이다. 매서운 채찍을 들었지만 꼭 필요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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