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았던 어린 시절

2014-09-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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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택(사업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찐따 경철이를 두목으로 삼고 이름도 ‘활빈당’이라고 거창하게 지어놓고는 도둑질만 해왔다. 그때 도둑질은 했지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도둑질이 아니었다. 일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차역 같은 데는 미군 공병대서 크레인같이 큰 차들이 와서 작업했는데 나는 주로 망을 많이 봤다. 망이나 봤다고 무시하는 것 같은데 망보는 것도 기술이다.

우선 운전수가 어디 갔나 즉 화장실 갔나 혹은 간식 먹으러 갔나를 잘 파악한 뒤 진양이라고 소리친다. 높은 차 운전석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걸려있는데 기합 빠진 미군들은 이걸 잘 안 잠가둔다. 그런 차가 바로 우리의 먹잇감이다. 내가 진양이라고 소리치면 찐따를 목마태운 짱구가 그걸 득달같이 채가지고는 바로 진석이한테 패스해 그러면 진석이는 그걸 들고 방울소리도 요란하게 뛴다. 나는 사람이 급하면 저렇게 빨리 뛸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의 주 수입은 미군트럭을 터는 것이다. 애들이 무슨 미군트럭을 털었겠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도둑질을 열심히 했다. 찐따 두목은 우리보다 두 살 많았지만 다리를 많이 절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였던 것 같다. 나는 동작도 빠르고 침투력이 엄청 강하니까 주로 숨어서 망을 봤다. 미군차가 오면 나는 재빨리 운전수 혼자 타고 오는 차를 발견하면 ‘진양’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 그 트럭 앞으로 우리의 두목이 절뚝대며 접근한다. 그러면 운전수는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브레이크를 꽉 밟는다. 그 순간 짱구 영배는 뒤로 침투한다. 미군 트럭은 뒤에 텐트 같은 걸로 쳐놔서 쉽게 침투가 가능하다.


그 뒤에는 보통 작키나 타이어 감는 체인도 있고 운 좋은 날은 시레이션 박스도 있다. 그러면 그걸 잽싸게 밖으로 던진다. 그러면 진석이하고 나는 물건을 들고 정말 잽싸게 토낀다. 운나쁘게 짭새한테 걸리는 수도 있다. 그러면 물건 뺏기고 얻어터지고 짭새가 그걸 지서로 안 가져가고 집으로 가져가는 걸 따라가서 그 물건 달라고 했다가 얻어터지곤 했다. 그때는 에이 문둥이 콧구멍에 있는 마늘을 빼먹어라. 이렇듯 여러 사연도 많았지만 그래도 한참을 해봤다.

미국사람들을 어수룩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가 뭣 모르고 먼저 번 차를 시도하면 운전수가 브레이크 밟으면서 뒤를 쳐다본다. 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이냐? 그런 불상사를 불식시키기 위해 우리의 찐따 두목은 트럭 본넷트를 꽝 치면서 뒤로 자빠진다.

가는 다리를 걷어붙이고 부들부들 떤다. 그러다가 입속에 모아놓은 게거품을 슬슬 흘러 보낸다. 아무리 미군운전수라도 그쯤 되면 난감해지게 된다. 우리가 안전하게 튀었다싶으면 비실비실 일어나 휘척 휘척 걸어가면 운전수가 뒤에서 헤이 헤이 해서 쳐다보면 지갑에서 1달러짜리 몇 개를 쥐어주며 오케이를 몇 번하다가 그 차는 그냥 떠나간다.

당시는 미군한테 구걸하거나 미군물건 훔쳤다고 흉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번 돈으로 짜장면 곱빼기도 사 먹었다.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었는데, 얼마 후 마차산에 탄피 주우러 갔다가 그만 우리의 지주였던 찐따 두목이 불발탄이 터져 서거(?)하였다. 그 뒤로 우리 세력도 힘을 서서히 잃어갔다.

그때 나는 당수를 배우고 있었다. 작은 형의 말도 안 되는 복수심에 나를 당수에 입문시켰다. 5학년 때는 빨간띠를 맸는데 그때는 띠가 전부 5개뿐이었다. 어른들도 노란띠, 파란띠가 많았는데 내가 빨간띠니까 우쭐했다. 그 당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내가 나가서 재롱을 피우면 모두들 잘한다고 칭찬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당수 천재인줄 알았다. 그러다 5학년때 내가 짝사랑하던 여자애와 말다툼을 했다. 발단은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애한테 내가 막말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때 결심한 것이 좋다. 절에 가자. 절에 가서 홍길동이 처럼 장군이 되자. 그래서 집에다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집을 나섰다. 당수 같은 어린애 장난 말고 진짜 무술을 배우고 싶었다. 홍길동이도 처음에 절에 갔다는 말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합천해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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