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 씻겨주기

2014-09-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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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인간의 신체 가운데 가장 혹사당하는 부위는 발이다. 신체를 지탱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정을 받기는커녕 무관심 속에서 하찮게 취급되곤 한다. 게다가 발은 퀴퀴한 냄새 탓에 더럽게 여겨지고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부위이기도 하다. 신발 속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보니 어두컴컴한 곳에서 빛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신세인 셈이다.

발은 인체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심장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혈액순환의 장애가 심하고 노폐물하고는 가깝게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발은 걷고 뛰며 건강을 지키는 일등공신이자 신나게 춤추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도 불구하고 각별한 애정은커녕 푸대접 받기 일쑤다.


그래서 일까, 주인에게 혹사와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궂은일로 고생하는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집행하기 전 12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일에서 유래한 세족식은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의 정신을 나누기’ 위한 의식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랑과 섬김’의 의식인 발 씻겨주기는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자들의 발 씻김은 조건 없는 섬김이자 참다운 리더십의 모습이기 때문일 게다.

성경의 누가복음 10장 43-44절에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여러 직분으로 리더가 되는 이들이 먼저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목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권위적 리더십’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그 교회가 올바로 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인교계에서 끊이지 않는 내분의 분쟁도 일부 교회지도자들이 평신도위에 군림하고자하는데 잘못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평신도들로부터 받듦을 받게 되면 겸손해지기 보다는 목이 점점 곧아져 가는 게 문제란 것이다. 평신도의 발을 씻겨주기 보다는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점점 깊어지다 보니 평신도를 이해하고 감싸주며 먼저 다가가 품어주는 일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들은 평신도들이 먼저 이해해 주어야 하고, 품어야 하며, 절대 순종해야한다고만 여기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섬김의 리더십’의 의미와 달리 섬겨야할 사람이 섬기지 않고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다가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인사회도 ‘섬김의 리더십’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인사회의 지역, 직능단체 중에서 실종되거나 유명무실한 단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장’들은 많지만 ‘참다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회장’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출범 당시는 낮은 자세로 봉사와 헌신하는 자세로 시작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고개를 낮추지 못하고 섬김만을 받으려고 우쭐되다 혼자만 남는 회장들 때문에 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섬김의 리더십’보다 ‘권위적인 리더십’을 앞세우는 회장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그들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끼리끼리 뭉치고 아니면 서서히 파멸의 길을 가는 것이다. 결국 회원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하지 않고 명령과 허세를 부리며 섬김만 받으려는 ‘회장’들은 한인사회에서 내 쫓김을 당하거나 ‘왕따’로 전락하는 게 현실정인 게다. 그래서 한인사회에서 점차 실종되는 ‘섬김의 리더십’이 아쉬울 뿐이다.

발을 씻겨주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의 정신을 나누는 것이기에 겸손이 없으면 힘들다고 한다. 섬김이란 나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존중하는 겸손의 마음씨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발을 씻겨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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