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국가 3도 낮춰 부르기

2014-09-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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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방문 하루 전, 서울시 교육감에 의해 시행된 애국가 낮춰 부르기는 현재 대한민국 사람 어느 누구도 그 위험성의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다는 KBS 교향악단 김필주 바이얼린 수석주자의 애절한 글을 보았다.

만약 이 글이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 좌시하기 어려운 중대 사건이다. 여기에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등교시간을 9시로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애국가 3도 낮춰 부르기 발표는 전교조로 하여금 애국가 부르기를 기피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음악에 있어서 음정이 1초당 진동을 국제기준으로 보면 1초에 440으로 국내 무대에서는 443, 국제무대에선 445로 녹음에서는 45로 시행이 되고 있다 그런데 1초당 진동이 440과 445는 같은 음정이지만 느낌에서의 차이는 축제장과 장례장의 차이로 느껴진다.

이런데도 애국가를 3도 낮추었으니 애국가의 원곡에서 느껴지는 기백과 장엄함은 어느 나라 국가보다도 세계 최고인데 3도 아래의 노래로 바뀌면 단조의 기운으로 아주 우울하고 어두운 맥 빠진 노래로 변해 버린다는 것이 KBS 교향악단 김필주 씨의 주장이다.


이것은 운동권 노래보다 애국가를 하위에 두려는 무서운 전략이다. 전문가 아니면 이 사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느끼지 못하고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는 서울시 교육감과 전교조의 합작품으로 고도의 음모이자 반 매국 행위이다. 일부 전교조들의 좌파 행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의와 토론 경쟁과 타협 민주적 절차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고질적인 한국 좌파들의 형태이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사회주의 노선과 흡사하고 마치 ‘폭력혁명’을 주창한 볼셰비키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요즘 한국은 진보는 현대이고 보수는 구식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추세다. 참 어이없는 이야기다. 이는 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식 해법이다. 국민 대중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자와 없는 자간에 이간을 불러일으켜 있는 자를 내 쫓고 없는 자가 차지하자는 케케묵은 마르크스, 레닌 시대의 구시대적 산물이다.

혹자는 좌, 우의 균형 잡힌 인식 없이 우리 정치의 안정과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수면위로 끌어 올려 현실화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 자주파들의 애국적 탈바꿈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전술적 타협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남한의 정통성과 민주적 절차를 무시 부정하는 그들의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애국가 3도 낮추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애국가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민주화와 더불어 나라의 노래 국민의 노래로 정착되어 왔다. 이제 우리도 뚜렷한 역사관과 보수주의적 색채를 가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전통을 확고히 유지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민심을 체감, 거기에 따른 해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오해영 평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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