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2014-09-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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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밖으로 나왔더니/ 얼굴이 붉은 농부처럼/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건네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가장자리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도시의 아이들처럼 창백했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흄(Thomas Hulme)의 ‘가을’이란 시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찬기가 스며든다.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시인 최승자의 ‘가을’이다. 가슴을 가라앉히는 가을의 하늘이 낙엽을 하나둘씩 떨어뜨리며 가을을 신고한다.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게 되나. 한 여름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한 잎 두 잎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이리저리 흩어진다. 아님, 사람들의 발에 밟혀 속살이 찢겨지듯 헤진다. 그래도 그들은 아무 저항이 없다. 9월의 중순, 낙엽이 쌓여들 간다.

인생의 가을은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나이를 100으로 잡아본다. 또 사계절에 비유해 본다. 한 살부터 25살까지는 봄, 26살부터 50까지는 여름, 51살부터 70까지는 가을, 71세부터 100세까지는 겨울이 된다. 가을에 해당되는 51세에서 70세 사이는 겨울로 넘어가는 생의 황혼기를 맞아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가 된다.

가을의 나이에 열심히 준비해야 겨울의 나이를 잘 맞이한다. 그렇지 못하면 냉기로 가득 찬 겨울, 폭풍처럼 휩쓸려가는 겨울, 비바람과 눈보라 휘몰아치는 황야 같은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여름의 들뜬 태양속 광기어린 시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가을의 나이 속에는 사색과 철학이 담겨 잘 익은 과일처럼 향기를 내뿜는다.

가을엔 철학자가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나뭇잎에 비교해본다. 발에 밟히어 흩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생을 되돌아본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되뇌어 불러본다.

“그 잎새에 사랑의 꿈~고이 간직하려던/ 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한 때 이곡은 불문율의 금지곡이었다. 이 곡을 부르면 차중락처럼 일찍 세상을 하직하니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가을만 되면 이 노래를 흥얼되곤 했다. 어디 차중락이만 일찍 세상을 떴는가. 아니다. 세상 뜨는 사람이 순서가 어디 있나. 하늘이 부르면 언제고 가야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요 오늘을 세상의 마지막처럼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아니던가. 쓰잘데 없는 미신 같은 불문율에 얽매어 가을을 욕 먹인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는 가을의 의미를 푸근하게 한다. 담쟁이덩굴에 남아있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이 날 거라 생각하는 존시. 폭풍이 불던 날, 떨어진 잎새를 밤새 그려 붙이다 생명을 잃어버린 화가 베어먼 영감의 희생. 룸메이트를 위해 베어먼 영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친구.

결국 존시는 폭풍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은 잎새를 보며 소망을 보았고 그는 살아난다. 뉴욕대학이 있는 맨하탄 4가엔 오 헨리가 자주 다니던 바(Bar)가 있다. 언젠가 이곳을 찾아가 오 헨리의 입김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오 헨리가 거닐던 맨하탄 4가의 워싱턴광장은 가을엔 아름다운 고목의 단풍들이 길손을 즐겁게 한다.

가을! 오곡이 무르익어 풍성히 넘치는 수확의 계절이요 성숙의 맛을 느끼게 하는 사색의 계절이다. 이 가을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김현승의 시, ‘가을의 기도’가 생각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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