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교회 새바람 필요하다

2014-09-13 (토)
크게 작게
조성구<목회학 석사>

정치가인 무솔리니는 내가 이탈리아를 위하고 있는 것은 대영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영국국민이 영국을 위하고 프랑스 국민이 프랑스를 위하여 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 한국인들도 무솔리니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선동과 선전이 횡행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교황이 하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한다는데 웬 난리법석을 떨었는지... 아마도 한국인들은 여러 모로 위로받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오늘날 로마를 찾는 사람들은 새로 건축된 궁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폐허만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다. 초원에 만발한 백화를 보기에 지친 눈은 거친 바위와 산을 보고 싶어 한다. 멀리서 보던 교황이 눈앞에 하인으로 변한 것에 놀랐을 것이고 감동받고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온 목적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했다. 교황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자면 종이나 하인이나 머슴이 적임이지 그 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그는 하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한국교회의 일부 불신을 모든 교회에 떠넘기려하는 군중심리에 쏠리고 있다. 흔들리는 통나무가 다 쓰러지는 것도 아니요, 한 마리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일부 잘못된 교회와 교주 위주의 신앙이 모든 교회의 책임은 아닌 듯싶다. 무엇이 그토록 진리를 왜곡하게 하여 국민의 신뢰를 일고 있는가. 수많은 개혁자들과 순교자들에 값진 피가 울부짖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한국교회는 수직 성장에 치중하면서 모으는 데만 급급했고 실제로 복음의 확실성에 대처하지 못했으며 목회자들에 설교를 위협하는 세상의 힘이 밀려 말씀 사역에 질이 떨어지고 목회자들의 생활 목적으로 치닫게 되어 그리스도의 사명감을 잃고 있는 것이며 일부 교회가 교주위주의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직분, 직책도 없었으며 집도 절도 없었다. u“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라(마태23:10)”고 하셨다. 목회자가 직분을 직책으로 알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데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교육자 자신이 교육을 받아야 하듯 목회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참된 과학과 참된 성경 지식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현 시대는 솔로몬의 금장식 성전보다 스룹바벨의 나무성전을 원하는 시대이다. 낡은 신앙이 돌처럼 단단히 박혀있어 어렵기는 하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개혁의 장이 열리지 않는 한, 교회도 세상적이라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을 결코 막을 길이 없다.

교회는 산 위에 세운 도시와 세상의 빛이라 했으며 고립될 수 없고 항상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야 하며 그것이 교회의 고된 책임이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종과 하인과 머슴으로서 소명감 있는 청지기가 되어 농부의 일을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기쁨을 거두리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