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작이 반이다

2014-09-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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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학생들에게 ‘부모’라는 한자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부모’라는 말을 넣어서 짧은 글을 지어보라고 하였다. 그 중에서 우승을 한 것은 ‘부모님의 부모님은 조부모님이다.’였다. 그들은 ‘한자배우기’에 흥미를 보였다.

한국말의 70%가 한자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휘 늘리기를 위하여 쉬운 한자를 배우는 것도 좋겠다. 그들은 영자와 한글이 ‘소리’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한자처럼 ‘뜻’을 나타내는 글자가 있음에 흥미를 느끼는 듯하였다.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니까 신이 났다.


또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에 속담이 있다. 속담이 민중의 지혜가 응축되어 널리 구전되는 민간 격언이기 때문이다. 속담이 꼭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민족성이 묻어나는 점도 재미있다. 학교가 새 학기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작’과 ‘반’이 어떻게 같으냐는 것이다. 두 낱말의 뜻이 결코 같을 수 없다고 우긴다. 여기선 단순한 낱말 풀이가 아니고, 그 말들의 상호작용을 하는 ‘중요성’이 같다고 말한다. 속담은 말을 짧게 줄이면서 그 뜻을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일을 한다. 그래서 9월의 새 학기 출발이 중요함을 알리고 싶다.

어떤 일이나 확실하게 시작을 하면, 그 진행이 순조롭다. 흐리멍덩하거나, 엉거주춤하면서 출발을 하면, 그 결과가 대부분의 경우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무슨 일이나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시작이 중요하다’ 또는 ‘시작은 결과를 결정한다’등이 좋겠단다. 이만큼 속담에 대하여 토론하였으니까 ‘시작’의 중요성을 각자가 생각하기로 하고 9월을 시작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시작’으로 표어를 만들자는 것이다. 즉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호소하거나 말하기 위하여 주요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짧은 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러더니 제각기 한 마디씩 하였다. 시작을 잘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웃는 시작은 웃는 결과를 얻는다, 씩씩한 첫걸음이 웃음으로 골인, 첫걸음을 조심하면 큰 열매를 얻는다, 첫 시간이 중요하다, 힘찬 첫 출발이 꿈을 이룬다. 공책 끝장까지 첫 장 글씨처럼... 제법 시작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생각들이 모였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우리들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처음 하는 일뿐인가. 아니다. 일이 10%, 70%, 95% 진행이 되었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느 일이나 그런 것이 아니지만, 이런 여유가 우리를 편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할 것인가. 내가 바라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등이 뚜렷해야 목표가 된다.

뚜렷한 목표는 확실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그것은 내 자신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확실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목표는 새로운 길을 걷게 하며, 이는 시작부터 다르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을 하면, 이미 일의 반쯤 이룬 것과 같은 무게가 생긴다.

가까이서 멀리서 함성이 들린다. ‘우리는 새 출발을 해요, 9월이니까’ ‘나는 노래모임 회원이 될 거야’ ‘나는 동네 스포츠단에 들어갔지’ ‘일요일 사생회원이 되었어’ 꼭 어느 단체에 들어가는 것만 좋은가. ‘나는 올해 시집을 내도록 노력할 거야’ ‘앞마당에 예쁜 꽃밭을 만들고, 뒷마당에 채소밭을 만들 계획을 어떻게 생각해?’ ‘나는 우리 집을 좀 더 생활하기 편하게 새로운 구상을 하겠어’

어른, 어린이가 뒤섞여서 9월맞이를 하는 모습이다. 9월이 새해인가, 왜 이런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걸까. 언제든 관계없다. 몇 번 다시 시작하여도 좋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즐거움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새로운 에너지로 새로운 시작을 한다.하여튼 미국의 9월은 다시 일을 시작하는 때다.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행렬에 참가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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