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과 9.11

2014-09-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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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은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고 11일은 9.11테러 13주기이다. 추석은 조상에게 예를 올리거나 기도를 하는 날이고 9.11은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 테러로 인해 죽음을 당한 자를 기리는 날로 모두 망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날이다.
지난 주말에는 롱아일랜드 묘소로 성묘를 다녀왔다. 같은 교회 한인들이 묻힌 곳이라 여기 저기 비석마다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이 벌써 성묘를 다녀간 이들이 많았다.

이번 가을에는 음력 9월이 두 번 들어있다. 9월 24일부터 10월 23일은 평년 음력 9월이고 10월 24일부터 11월 21일은 윤달 음력 9월이라고 한다.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윤달이 들어있는 갑오(甲午)년이라 올 10월 24일에서 11월 21일 사이에 조상의 묘를 이장하거나 수의를 장만하고 묘역을 준비하면 좋다고 한다.

윤달은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끼워 넣은 달로 예로부터 여벌로 남은 달이라 귀신도, 조상도 쉬는 달이라 부정을 타지 않는다는 것, 하늘과 땅의 신이 쉬는 기간이라 인간이 다소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묘업계에서는 이때를 기해 조상의 묘 이장과 수의 장만 판촉행사를 열고 있다.


뉴욕 한인사회에도 이장 계획을 지닌 이들이 있다. 오래전 돌아가신 한국의 시골 선산에 묻힌 아버님 유골을 화장하여 자손들이 모여 사는 뉴욕으로 모셔와 롱아일랜드 어머니 묘소와 합장한다는 것이다.또한 이번 주말에 장을 보아 음식을 장만하여 월요일인 8일 아침에 추석 차례를 지내자니 출근 시간을 놓칠까 걱정하는 한인도 있다.
추석 사흘 뒤는 뉴욕을 비롯 전 미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은 9.11테러가 발생한 날로 테러의 상처와 아픔을 되돌아보게 된다.
올 4월에는 그라운드 제로에 9.11 추모관이 개관되었다. 이곳에는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에서 가져온 녹슨 철제 기둥 2개, 3,000여명 희생자들 사진과 유품, 여객기 파편, 현장으로 달려가던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 희생자의 음성 메시지 등이 테러에의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 2011년에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개장된 추모공원 안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사각 연못 2곳, 사우스 메모리얼 풀( South memorial pool)과 노스 풀(North memorial pool)이 있다.
무너진 쌍둥이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조성된 연못의 깊이는 30피트(9.1미터)이며 연못 벽면 윗부분에서 나온 물이 벽면을 따라 폭포처럼 떨어져 바닥의 네모난 구멍으로 사라진다.
추모연못 벽의 동판에는 테러로 희생된 2,98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중 한인도 21명 있다. 한국출생 12명, 나머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 한다.
이곳에 가면 가끔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만 철컥 날 뿐,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말을 못하는 것이다. 들리느니 그저 한없이 반복되는 물소리뿐이다.

참배객들은 동판에 새겨진 이름 위에 꽃 한송이를 바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새겨진 이름을 더듬어보는 등 분위기가 숙연하고 비통스러워서인지 사진을 찍는 사람도 드물다. 관광지 곳곳마다 비디오를 돌리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던 사람도 “미안해서 사진을 못 찍겠네” 하며 기념사진 딱 한 장만 얼른 찍고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어버린다.

벽면을 타고 한없이 흘러가는 물은 희생자의 눈물이고 남겨진 가족의 눈물이다. 결코 마르지 않는 가슴 속 눈물이다. 왜 죽는 지도 모르고 순간에 한번 뿐인 삶을 압수당한 희생자들, 유가족은 평생 그 아픔을,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곳을 찾아가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어머니,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간지도 오래고 나 자신 얼마나 살아있을 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무정한 세월에 무념무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오늘 하루의 일상이 고맙고 밥 한 끼와 커피 한 잔의 허용이 눈물겨워진다.
추석과 9.11을 맞으면서, 깊어가는 가을 따라 다른 사람을 돌보고 생각하는 인류애도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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