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가을이 오나보다’

2014-08-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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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가고 있다. 가을을 알리는 입추와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다. 더위는 한풀 꺾이면서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여름과 서서히 다가오는 가을을 함께 느끼는 8월말이다.

참으로 시간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다.하루가 다르게 더위가 막바지로 물러가고 있다. 늦더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뒤뜰에서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온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계절은 이미 가을인가 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 할지라도 계절의 순환은 막을 수 없나보다. 가는 여름은 오는 가을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 단지, 어김없이 열리는 새로운 계절에 순응할 뿐이다. 아직 한낮의 열기는 그늘을 찾게 한다. 새벽엔 쌀쌀함을 맛본다. 여름과 가을의 기운이 공존하고 있다. 문득 올려본 하늘이 어느새 저 만치 푸르고 높아졌다. 아, 가을이 오나보다.

길거리에선 코스모스를 만난다. 파란하늘을 배경삼아 피어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가을의 상징이지만 요즘은 한여름부터 시절 없이 핀다. 그래도 코스모스는 역시 가을 코스모스가 제 멋이다. 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란다. 꽃잎에서는 하늘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런 코스모스가 몹시 가늘고 연약한 자태로 살랑거리며 춤을 춘다. 그래서 한국 고유어로는 ‘살살이 꽃’이라 부르나 보다.

그렇게 코스모스는 가을을 알리고 있다.가을은 별칭도 참 많다.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풍요와 결실의 계절, 남자의 계절 등등. 그 중에서 가을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별칭은 ‘남자의 계절’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가을이 남자의 계절일까?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가을을 타기 때문이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남자들이 약간 우울해지고 기분이 침체되는 것을 말함이다.

남자들이 유독 가을을 타는 이유는 뭘까?
우선,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호르몬이 주범이라 한다. 정확한 의학적 용어로는 ‘계절성 기분 장애’라 한다. 무슨 얘긴가 하면,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때는 현저히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도 줄어든다. 일조량이 줄면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늘어나는 반면 빛을 받아야 늘어나는 세로토닌은 줄어든다. 통상 멜라토닌은 기분을 가라앉게 해주고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결국 가을이 오면 세로토닌이 줄어드는 만큼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란 얘기다.
정신분석학적인 원인도 있다.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강한 남자가 겨울에 비해 안정 지향적이 되는 가을에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가을이면 유독 일탈을 꿈꾼다고 한다.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의 바람기를 꼭 챙겨야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란다.
또 다른 이유는 한의학의 음양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봄은 기운의 흐름이 음인 여자에게서 양인 남자에게로 변하여 흐르는 시기고, 가을은 양인 남자에게서 음인 여자에게로 흐르는 시기다. 그래서 남자가 가을에는 우울해 진다는 논리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여자의 계절이란 말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럼, 가을을 타는 남자들은 어찌해야 하나?
평소보다 야외활동을 늘리고 실외에서 걷기, 조깅 등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우울한 감정을 억압하지 말고 훌훌 털어 놓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감정표현이 약하다. 그래서 속으로 더 앓기 마련이다.

가을의 우울도 숨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 오히려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가을에 우울로 앓기보다는 가을을 마음껏 즐기려면 자신의 당당한 감정 표현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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