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월이 다 가면 무엇이 남을까?

2014-08-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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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세월이 내 것이 아니니 아무도 세월 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월에 대하여 무관심 하다가 하루의 끝자락이나 월말, 그리고 연말에 가서야 세월이 있었고 그 세월이란 참 빠르기도 하구나 하고 아쉬움을 달래거나 많은 내용을 담은 한숨을 쉬게 된다.

아무리 여름이 덥다 한들 가을은 온다. 그리고 겨울도 온다. 세월은 우리가 타고 가는 한척의 배일 뿐, 그렇게 가고 가는 세월, 세월이 다 가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어떠한 이야기를 남겨 줄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벌써부터 분다. 한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인생이란 원래 실속이 없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시간에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 무엇인가를 조각하며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짓도 지나고 보면 아무런 실속 없는 헛된 짓으로 기억 될 뿐이다.


결혼 전 고운 마음으로 고운 실을 골라 수를 놓는 여인처럼 시간이란 흰 판에 되도록이면 더 아름다운 수를 놓으려고 온갖 정성을 들여 수를 놓지만 시간이 지나 그 시간이 세월이란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고 나면 모든 생각이 달라진다.

내 것이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을 모르고 내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별짓을 다 해가면서 사는 것이 삶이었다. 나이 많이 든 노인에게 그토록 오래 살면서 무엇을 당신 것으로 만들었냐고 물으면 대답을 찾아보려고 허둥대고, 무엇이 당신 것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있다면 가슴속에 박혀있는 시퍼런 멍일 분이다.

자식들이 우러러(?) 보는 아버지들은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키우기 위하여 상사로부터, 거래처로 부터, 동료로부터 많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견디면서 살았고, 자식들이 고향처럼 여기는 항상 따스한 어머니는 60년대 초 구로동 공업단지의 여공들보다도 더한 노동을 견디며 살아왔다.

모든 것이 멍으로 남는 일들을 잘도 참으면서 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가 잘이 갈수록 위대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의 입은 즐기기 위해서 호화스러운 음식을 투정하며 섭취했고, 어떤 사람의 입은 건강을 위해서 약이 되는 음식을 취했고, 어떤 사람의 입은 살기 위해서 음식을 취했고, 어떤 사람의 입은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아무 음식이라도 먹을거리라면 먹었다.

누구의 죄도 아닌 그 허기를 면해주기 위해서 내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직을 19살 때부터 만주의 모질고 찬 엄동의 겨울 속을 견디며 시작해서 한평생을 그 직에서 마치시고 돌아가시었다.

내가 아버지를 매일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 가는 것은 그런 아버지나 어머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데에 있다.
내 것이 어디 있는가! 공수래, 공수거, 인생은 여부운이라는 옛 말이 성경의 전도서와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성경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창세기에 매달려 있고, 젊거나 중년이 되면 성경의 로마서를 가슴에 품지만 세월이 거의 다 간 노인들은 전도서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인생은 한숨과 회한이 결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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