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글씨, 자판글씨

2014-08-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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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생활문화가 달라지면, 거기에 따라 사용하는 말들이 달라진다. ‘집밥’이란 말이 바깥에서 사서 먹는 음식에 맞서는 말로 사용되는 것도 하나의 예이다. 요즈음 ‘손글씨’라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그럼 몸의 다른 부위로 쓰는 글씨와 구별하는가. 그게 아니고 이는 자판글씨와 구별하는 말이다. 손글씨와 자판글씨는 제각기 용도의 차이를 제공한다.

손글씨의 사용 빈도가 적어지면서 여기 따르던 말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썩 잘 쓴 글씨를 가리키는 명필, 우아한 글씨체, 개성미 넘치는 필체...등의 말과는 멀어졌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글씨체는 품격이라고 손글씨의 향상을 바라던 노력이 필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사랑의 편지, 일기, 메모까지도 자판글씨를 이용한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자판글씨에 마음을 싣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자판글씨에 장점이 없는가. 분명히 있다. 공문, 책, 규칙, 알림...등 그 내용에 마음을 실을 필요가 없이, 상대방에게 분명히 내용을 알려서 이해를 이끌어내는 글들은 자판글씨가 제격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손글씨와 자판글씨를 구별해서 사용함은 나 자신이 판단할 일이다.

뉴욕타임스가 알리는 반가운 소식은 ‘글씨 쓰는 것을 손으로 배워 깨우친 어린이들이, 읽기도 빨리 배울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정보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이다. 워싱턴대 버지니아 버닝거 박사도 필기체를 쓴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많은 단어를 더 빠른 속도로 생각하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심리학자들도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노트 필기를 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배운 내용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해 앞선 연구 결과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바로 손글씨를 배우면 더 똑똑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공부한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은 많이 읽고, 그것을 기억하기 편하도록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습관화되면 학습의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우수하지만 용량이 많아지면 믿기 어려워서, 알게 된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그 이후는 기록하는 방법에 따라, 활용하는 빈도에 따라 학식이 생활화한다.
예전 학생들은 손글씨를 열심히 단련하였다.

필순에 따라, 바르게, 빨리, 예쁘게, 개성미 있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글씨를 빨리, 빠르게, 예쁘게 쓸 수 있음을 자랑하였고, 칭찬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경향을 찾을 수 없다. 자판글씨 일색이며, 손글씨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별로 볼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예쁜, 멋있는 손글씨를 보면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손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손글씨 쓰는 일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쓰는 습관을 기른다. 어린 학생이라도 자꾸 쓰면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의 글씨체를 길러가게 된다. 우선 그림일기에 몇 마디를 써넣다가, 일기의 글 길이를 늘려가는 것도 좋고,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심부름할 때 메모하는 버릇도 길러주고 싶다.

손글씨를 자랑할 수 있는 행사도 생각할 수 있다. 손글씨 전시회, 받아쓰기 대회, 붓글씨 쓰기 모임, 제시된 그림에 설명달기...등 재미있는 행사를 열어 손글씨를 자랑하고, 재주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손글씨도 다른 재주처럼 성장한다. 사람의 개성이 생김새, 마음쓰기, 목소리, 말의 내용...등 여러모로 나타나는데 손글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손글씨를 즐기는 동안에 그것이 자신을 상징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손글씨의 아름다움이 심정의 고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느껴짐도 그 까닭이다. 터무니없는 나의 황당한 꿈은 지금도 개성적인 손글씨로 쓴 ‘사랑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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