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레이시, 데이지, 라일라

2014-08-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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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가 미국에 와서 정들여 키웠던 강아지 세 마리에 대한 이야기다.
약 6년 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강아지 Daisy(16 lbs black & white Shih Tzu)가 16살 반에 내 곁을 떠나버렸을 때, 나는 이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Daisy는 2.5살 때 우연히 우리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 우리 집에는 이미 커다란 잡종개 Tracey가 우리 가족과 많은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내 미용사인 한인 여성이 Daisy를 2주정도 봐 달라고 해서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식구가 되었다. 세 아이들과 내가 애니멀 셸터를 방문했을 때 2주후에 주사를 놓아 안락사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데리고 왔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개를 키우는데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예쁜 강아지를 만나도 얼른 입양할 자신이 없었던 때라 그날 애들은 예쁜 강아지들보다도 Tracey의 역사에 더 관심이 생긴 것이다. 밖에 데리고 나와 놀아봤더니 뜻밖에도 영리하고 귀엽게 노는데 놀라서 우리는 그 개를 갖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Tracey는 애초 세일즈맨인 흑인 남자가 귀엽게 키웠는데, 일 때문에 개를 집에 놔두고 1, 2주씩 여행을 하는 동안 배가 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연명 했고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잡아서 셸터에 갖다 놓으면, 주인이 돌아와 벌금을 물고 개를 찾아가곤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tracy를 가엾게 여기고 그것을 이해하고 지극히 예뻐했는데 남편은 ‘족보 있는 순종’이라고 Daisy를 편애하고 ‘Tracey는 잡종 똥개라 행실이 나쁘다’고 미워했다.

우리가 없을 땐 런드리룸에 가두어 놓아 Tracey가 그 좋은 힘으로 패밀리 룸으로 향한 문을 얼마나 긁었는지 문이 다 부서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Brown대학 기숙사에 있던 둘째 아들 진이가 자기가 돌봐야 한다고, 아파트로 이사 나가면서 Tracey를 데려다가 행복하게 살았다. 17세가 되어 병에 걸리니 업고 다니며 치료해 주었고, 죽어서는 필라델피아의 딸 케이가 진이 오빠에게로 가서 함께 장례를 치르고, 재를 항아리에 담아 우리가 살던 Summit 뉴저지 집 벚꽃나무 아래 심었다.

Daisy는 내가 가장 참기 어렵게 슬펐던 시절, 3년에 걸친 이혼과정 동안, 나를 지키고 위로하며, 아빠를 물듯 맹렬 공격해가며 나를 보호하려 했다. 내가 살던 고장을 떠나 멀리 떨어진 시골 작은 집, 문명에서 소외된 듯 한 뉴저지 서북부의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우리는 함께 자연과 산야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원래 몸이 강하지 못했던 터라 5살 때 유방암에 걸려 모든 젖꼭지와 자궁을 다 드러내는 수술을 해서 초죽음이 된 채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 쓰라린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기적처럼 전 보다 더 강인해져서 등산 선수가 되어 16살 반까지 살아 주었다.

2008년 11월 6일 한 달 이상 앓다가, 내 애간장이 타도록 연민에 찬 검은 두 눈으로 오랫동안 나를 쳐다본 후 눈을 감았다. 나는 6개월이 지날 때까지 거의 매일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들 셋이 의논하여 Daisy와 흡사한 강아지를 찾아 내게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 어린 강아지, 귀여우나 고슴도치 같이 못나고 작았던, 내가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던 겁쟁이 벌레가 지금 나의 Lyla로 컸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이 동물을 휘어 잡아보려 아직도 씨름하며, 이것이 열어 주는 또 다른 신비의 세계에 몰입해 볼까 한다.

장지윤(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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