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빌리 홀리데이의 ‘이상한 열매’

2014-08-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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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리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산들바람에 검음 몸뚱이가 매달린 채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멋진 남부 풍경에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 그리고 어디선가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

1939년 빌리 홀리데이(1915~1959)가 뉴욕의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부른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 노래를 2주일 전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들었다.

백인들의 린치로 교수형 당한 흑인들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상징한 이 노래는 1937년 뉴욕의 유대계 백인 아벨 미어로폴이 작사·작곡했다. 이 노래는 흑인민권운동을 위한 운동가요가 되었고 빌리 홀리데이가 불러 이후 흑인에 대한 린치를 사라지게 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를 때 빌리 홀리데이는 굶주림과 노동, 마약중독, 수없이 인종차별을 당한 자신의 삶을 연상한 듯 눈을 감고 기도하듯,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고 한다. 분노를 누르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러나 피를 토하듯...

빌리 홀리데이 뮤지컬 ‘레이디 데이’(Lady Day)에서 유명한 뮤지컬 가수 오 드라 맥도날드는 빌리 홀리데이로 분해 그녀의 비참하나 빛났던 삶을 노래했는데 어찌나 생전의 빌리 홀리데이 음색과 똑 같은 지 자그마한 홀의 청중들은 열광했다.

필라 슬럼가에서 태어나 불과 10살에 40대 백인에게 성폭행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불량소녀로 몰려 감화원에 들어가는 인종차별을 당했고 이후 어머니와 뉴욕으로 이주하여 할렘 사창가, 하녀, 홈레스로 살다가 할렘의 ‘포즈와 제리즈’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면서 재즈계의 전설이 된 빌리 홀리데이, 늘 머리에 새하얀 치자꽃 한송이를 달고 노래한 그녀는 청중이 바닥에 던져주는 팁은 절대 안 줏었다고 한다. 청중은 그녀 손에 직접 팁을 쥐어주었고 도도한 그녀의 별명을 음악 동료 레스터 영은 ‘레이디 데이’라 지어주었다.

초록색 원형 무대의 마이크 앞에 서서 피아노, 콘드라베이스, 드럼 세 악기를 연주하는 흑인 노인 연주자로 구성된 밴드에 맞추어 노래한, 완전 빌리 할러데이 ‘짝퉁’인 오 드라 맥도날드에게 사인을 받고자 늦은 밤에도 사람들은 줄지어 서있었다.
빌리 홀리데이 사후 50년 이상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CD로 들어온 빌리 홀리데이의 애잔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는 요즘, 그때와 지금 미국은 얼마나 달라졌을 까.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 영부인과 두 딸도 흑인이고 에릭 홀더는 최초의 흑인 법무장관이 되었다. 그런데 오바마 재임이래 최대의 인종갈등의 최전선으로 떠오른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18세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이 쏜 수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자 퍼거슨시에서는 연일 경찰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약탈과 방화도 발생했다. 스태튼 아일랜드의 흑인 남성 에릭 가너 질식사 사건과 연계돼 22일 뉴욕에서 열린 예정인 에릭 가너 추모행진에 브라운의 가족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사태가 뉴욕시로 확산되지 않을까, 흑백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다들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이미 LA폭동으로 한인 이민 수십년간 일궈온 터전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봐온 우리들은 하루빨리 연방정부가 공정한 수사를 하고 시위대가 냉정을 되찾고 폭력이 종식되기를 기다린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미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통계에 의하면 흑인응답자 80%가 이 사건이 중요한 인종문제를 부각시켰다고 답했고 백인들은 37%만 이같이 응답, 흑백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여전히 미국은 인종갈등이 진행 중이다.

당시 클럽에서 노래하는 빌리 홀리데이에게 노래를 신청하면서 한 백인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왜 검둥이가 나무에 매달려 죽는 섹시한 노래, 그것 들려주시우 ” 특정인종에 대한 배타주의, 자신들과 다르거나 못하다고 하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며 이기적인 것인지, 또한 타인종에 대한 무관심도 죄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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