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서와 화해

2014-08-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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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힘든 것이 있다. 바로 ‘용서’와 ‘화해’다. 이 용서와 화해가 안돼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고 힘이 드는가. 또 지구촌 곳곳에서도 국가 간에 얼마나 끔찍하고 참담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에 맞지 않게 서로 미워하고 질시해서 타인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잔혹하게 학대하는 죄악을 수시로 저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용서와 화해, 회개하는 아름다움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만큼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황폐해져 가고 있다.


성서에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구절이 있다. 형제와의 사이에 용서와 화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예수의 고귀한 가르침이다.

용서와 화해란 단어는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남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이들의 희생정신에서 피어난 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종신형으로 자신을 27년간이나 감옥에 가둔 백인정치인들을 출옥한 뒤 대통령에 당선되자 손을 내밀어 용서했다. 그리고 흑인들의 자유와 인권회복을 위한 희망의 기수가 되었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각인됐다.
한국을 4박5일간 방문하고 떠난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번 여정에서 가는 곳마다 낮은 자세로 사회에서 소외된 자, 세월호 참사나 전쟁 위안부 등으로 참극을 겪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 손을 잡고 포옹하고 미소로 화답하면서 그들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졌다. 예수의 가르침 그대로 실천해 보였다. 교황은 방문 마지막 미사에서 “죄지은 형제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보여준 교황의 메시지 중 특히 주목할 대목은 69년이나 분단 상태로 등져있는 형제나라 북한과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이 강조된 부분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국제적인 회담 석상에서 일본수상에 대해 언제나 냉담한 반응을 보여 왔던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서만 보아도 두 나라에 대한 우리의 적대감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과 일본을 거론하며 화해의 손짓을 처음 내보였다. 이들 나라에 우리가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보낸 것은 지금까지 이들 국가 간에 치유 불가했던 과거사에 맺힌 응어리와 상처들을 어렵지 않게 씻어내 새로운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통한 치유의 힘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저명한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사랑의 기술’에도 용서와 화해의 위력을 설명하는 좋은 구절이 있다. 물보다 부드러운 게 있는 가/ 바위보다 딱딱한 게 있는 가/ 부드러운 물이 바위를 뚫는다.

사람간의 관계를 물같이 부드럽게 하라는 뜻이다. 달리 표현하면 사랑으로 보듬을 경우 아무리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도 눈 녹듯 쉽게 풀릴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용서는 과거에 대한 용서가 아니고 미래가 없기에 용서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탱해주는 것이다. 이 관계가 무너지면 정신적 외로움과 심적 고통, 마음의 불행을 동반하기 쉽다.

인간간의 관계에서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한다. “아직도 ‘내게 화나 있는 거야?’ 했을 때 정말 용서한 것인가, 덮어둔 상태인가? 이 질문에서 분노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용서한 것이 아니다. 더는 아프지 않을 때 비로소 용서한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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