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당연한 한마디’

2014-08-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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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음대명예교수>

20 여 년 전 신임교수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선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한마디를 언젠가 대학신문의 칼럼에 소개 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 교수들, 머리가 좋아서인지 더 빨리 타락합디다. 부디 원칙을 버리지 마십시오.” 뭐 그리 새로운 내용도, 특별히 명언이라 할 만큼 감동적인 말도 아니다. 그러나 신임교수들을 바라보는 그때 그 노 교수님의 눈빛에는 분명 가슴 저미게 안타까운 호소가 있었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절실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존경하는 노 교수님의 그 ‘당연한’ 조언 한 마디! 정직한 학자의 고집스러움이 엿보인 강렬한 그 눈빛! 당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껏 의욕에 부풀어 있던 햇병아리 교수에게 그 ‘당연한 한마디’가 안겨준 충격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마치 삼복더위에 잠시 불어오는 솔바람 같은 그런 상쾌함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대학의 강단에서 정년퇴임한 지금, 이미 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나신 그 분이 남긴 그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가 아직도 이렇게 나의 가슴속에 절절히 다가오는 건 왜 일까?


눈 깜짝할 사이 정말 긴 세월이 흘렀다. 봄이면 어김없이 연구실 창밖을 화사하게 장식하는 연분홍색 벚꽃을 바라보며 어린 소녀처럼 가슴 설레 하던 일만도 벌써 몇 번이었던가. 마냥 어려보이기만 하던 제자가 어느새 아이 엄마가 되어있고 오페라 가수가 되어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어느새 원로교수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버쩍 든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20 여 년 전 그 선배 교수님께서 당부하신 ‘원칙’을 버리지 않는 교수의 모습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그 동안 나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선배 음악인으로서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줬나? ‘원칙‘을 지키며 사는 교수의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준 일이 과연 있었을까? 아니, 교수인 내가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재가 되어주는 대신 엉터리 번역본 역할이나 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갑자기 진땀이 난다.

그렇다. ‘선생님’ 이라는 직업은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운 직업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자유가 없는 직업일 게다. 수많은 어린 눈들 앞에서 한시도 편안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불편한 직업. 그것이 바로 선생이고 교수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예술가의 삶 또한 참으로 외롭고 고달프다. 온갖 복잡한 세상사와 달콤한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때 진정한 예술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니 이게 어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에 쉬운 문제이던가?

그렇다고 산속에 들어가 나 혼자만의 예술을 추구하며 사는 일 또한 쉽지 않으니, 참 생각할수록 대책이 없는 것이 예술인의 삶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 지독한 외로움과 갈등 속에서 영혼을 울리는 예술이 탄생되지 않던가! 기왕에 예술인의 길로 들어선 이상 별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현실이 파놓은 함정에 눈 딱 감고 빠져버리고 싶어지는 순간 자신과 죽기 살기 한판 승부를 겨루며 살 수 밖에. 방법은 단 하나, 그 ‘당연한 한마디’ 속에 해법이 있을 것 같다. 젊은 시절 언젠가 그토록 순수했던 초심이 세워 놓았던 그 원칙을 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나도 감히 20 여 년 전의 그 노교수님처럼 젊은 인생의 후배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불가능할 정도의 큰 꿈을 꾸며, 힘들지만 곧고 맑게 살아보자. “머리가 좋아 더 빨리 타락하는”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기에는 세월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인생의 마무리 손질은 젊어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나도 많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라도 부지런히 뭔가 마무리 ‘손질’ 같은 걸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또 한 번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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