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2014-08-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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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1945년 8월15일, 해방 69주년이다. 여전히 남과 북은 휴전 중이고 1992년 1월에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는 계속 되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1941년 12월7일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동인도, 태국, 미얀마, 필리핀으로 전쟁을 확대시킨 일본, 8.15를 ‘패전일’이라 부르는 그들은 점령지마다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다. 인간의 역사이래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던 많은 조선인들이 이후 조선으로 돌아오자 남성들은 환영 받았으나 여성들은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환향녀’(還鄕女)를 ‘화냥년’ 취급했다. 한명의 지아비를 섬기는 유교사상에 젖은 남자들은 저들 자신이 자신의 아내를, 딸을 지켜주지 못했음에도 당사자인 청나라에는 반항 한번 못하고 불쌍한 여성들만 집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에도 17세 꽃다운 나이에 강제납치 되어 말 못할 고초를 겪은 후 해방이 되어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이나 필리핀 어느 곳에서 한 많은 세상을 마감했거나 보낸 이들이 많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은 자국 군인의 사기를 올리고자 종군 위안부를 조직하여 1945년까지 15년 동안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일삼았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위안부 출신 여성들은 ‘일본군국주의의 성노예는 한민족의 수치다’, ‘부끄러운 일이다’는 보수적이고 편협한 시각에 오랫동안 숨죽여 지내야 했다. 그러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증언하면서 1992년부터 일본 대사관 앞 정기수요집회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 작년 11월 개봉된 중국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진링의 13소녀’를 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징대학살 당시 제네바 조약에 의해 보호받는 윈체스터 대성당에 수녀원 학교의 소녀들과 홍등가의 창녀들이 피신한다. 성당에 난입한 일본군들이 “처녀다”, “산채로 잡아”하며 어린 여학생들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옷을 찢는 과정에서 한 여학생이 2층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고$ 인간이란 탈을 쓴 짐승의 야수성과 폭력에 소름이 끼친다.

무차별 살인, 강간, 생매장, 방화, 약탈 등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를 밝히는 증언과 사진이 담긴 다큐멘터리도 중요하지만 중국 문화와 스토리가 담긴 영화 한편이 남긴 잔영은 컸다.

장예모 감독은 “서양인들은 난징대학살 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중국 영화와 문화의 힘이 커지면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역사를 알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뉴욕·뉴저지 한인들은 미국 최초로 뉴저지 팰팍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고 지난 8월 4일에는 뉴저지 유니온 시티에 미국 내 7번째로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그동안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 조약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은 말소됐다고 거듭 주장했고 한국정부는 뒷짐 지고 있으니 정신대 할머니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고 미국 사는 한인들은 주머닛돈을 털어 기림비를 세우고 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가 불거져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지면 장차 일본이 노리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이럴 때 장예모 감독의 난징 사건을 다룬 ‘진링의 13소녀’ 같은 영화 한방 터져주면 좋은데, 한국의 감독들은 뭐하고 있을까?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실미도’의 강우석, ‘올드보이’의 박찬욱, ‘서편제’의 임권택, ‘남부군’의 정지영 등 거장들은 어떤 1,000만 관객 영화를 구상하기에,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도 외국인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다고 하는지.

어느 시대든지 여성의 성을 전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켰으면서 가장 큰 상처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여성들이다. 강제 징집되고 납치되어 소모품으로 이용됐던 위안부 여성들, 당사자들이 괜찮다는데 보수주의자 한국인들은 아직 일본에 의해 유린되고 억압당한 역사를 감추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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