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복과 교황 프란치스코

2014-08-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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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민족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 8.15광복 후 오늘날까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른 대한민국.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다시 남과 북, 둘로 갈라졌다. 이로 인해 남과 북은 지난 60여 년 동안 너무나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남한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온 국민이 단합, 힘든 보릿고개를 넘어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이제는 경제대국 12위에 오를 만큼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 속을 항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국제적으로는 언제든 공격을 받을지 모르게 온통 핵무기로 무장한 최강국들이 주변에 둘러싸여 있다. 북한의 핵공격 위협에서도 한시도 자유로울 날이 없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행보는 일본의 국가채무 위기를 극우적이고 강경한 정치 군사적인 도박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질서를 깨고 아시아 패권국가로 재도약하려는 듯 일본 자위대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로 바뀌었다. 아시아 정세가 만에 하나 급변한다면 일본은 얼마든지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인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고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는 국토가 보수 진보 등의 이념, 지역감정, 학연 등으로 분열돼 동족끼리의 충돌이나 갈등 등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정치권이나 각 행정기관, 그리고 군대는 리더십부재로 지난 4월의 세월호 사건에 이어 임 병장 탈영 총기사건, 윤 일병 가혹행위 자살사건 등, 정치권과 사회, 군부대는 혼란과 무질서, 기강해이 등으로 허약해진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경제대국, OECD가입국이라고 떠들썩하지만 극심한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 팽배로 갈등과 분열, 심한 불신감도 갈수록 대한민국을 황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14일 찾아온 지구촌 사랑과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상처투성이인 한국 국민들의 다친 영혼을 치유하고 서로 간에 화해와 용서, 사랑을 주고받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교황은 검소함과 자비, 겸손, 빈곤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있는 가톨릭교계의 세계적 거인이다. 가톨릭교도 외에도 전 인류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고 있어 지구촌의 수많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이 제시하는 10가지 행복해지기 위한 지침 중 ‘더불어 살고 타인을 존중하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남을 험담하지 말라’ 등의 핵심적 가르침은 권위를 벗어던지고 낮은 곳, 함께 하는 곳을 향하는 교황의 소박한 면모를 보여주는, 지극히 우리 일상에서 요구되는 평범한 지침이다.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인 솔뫼성지와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서려있는 해미성지 방문과 함께 실직상태의 젊은이들과 장애인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과의 만남, 그리고 남북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 평화의 기도를 올리는 이번 교황의 메시지가 한국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어 그들의 갈라지고 다친 마음이 선(善)으로 봉합되고 희망과 용기가 부여되어 사회가 안정되고 나라가 바로 서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또 교황의 이번 파격적 행보가 69년 전 한반도에 울려 퍼진 만세소리, 광복의 가슴 벅찬 감격과 환희에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를 맞으며 격동 속에 걸어온 대한민국의 한 많은 역사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민족 간의 화해와 용서, 평화로 승화되어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 7,000만 한민족이 또 다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감격적인 제2의 광복, 그날이 하루속히 올수 있기를 염원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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