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의 양심, 고노와 아사히

2014-08-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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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많은 사람들이 양심대로 살기를 원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양심을 따라 살아보려 노력한다. 양심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선(善)의 소리로 선을 행동으로 옮기는 증세” 혹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인 인격적 의식”이라 한다.

이렇듯 양심은 개인에 대한 미시적 양심도 있지만 단체나 국가가 지니고 있는 거시적 양심도 있다. 거시적 양심은 미시적 양심이 전제되어야 참으로 양심다움이 된다. 힘이 센 국가가 힘이 약한 국가를 무력으로 장악해 식민지로 삼으려 할 때, 여기엔 국가적 양심이 “이래도 되는가?”란 자문을 국가 스스로 해야만 한다.

지난 5일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국가가 발뺌하는 역사에 대한 사실을 양심의 소리로 대신 발표했다. 아사히신문은 1면 칼럼과 2개면을 할애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자유의 박탈과 존엄 유린”이라며 “전쟁 중 일본군의 성적 상대를 강요당한 여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못 박았다.
그러며 “전시하 여성 성폭력은 현재 국제사회에 여성 인권문제의 맥락에서 파악되고 위안부문제 역시 이런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다”며 정부를 향해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후세에 제대로 전하는 동시에 폭력 등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적극 임해야 한다”고 아베정부를 매섭게 질타했다.


1879년 창간된 아사히신문은 요미우리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일간 중 하나며 8백만 부 이상 팔린다. 요미우리가 보수라면 아사히는 진보정론지에 속해 정부와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엔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사히는 1993년 8월4일 일본군위안부 문제조사결과를 발표한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를 전격 지지한다.

현 일본의 내각총리 아베가 고노담화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며 미국에까지 로비를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노 담화에는 “위안부의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다”고 강제로 징집된 것을 지적하고 있기에 그렇다.

또 담화에는 “위안부는 당시 일본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며 “정부는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양심적으로 반성하고도 있다.

그리고 담화에는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표명한다”며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의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있다.

이 같은 고노 담화가 발표되기까지는 아사히신문이 뒷받침됐다. 아사히가 위안부에 관한 심층기사를 계속 내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아베정부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일본은 절대로 위안부들을 강제 징집하거나 강압에 의해 그들을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발뺌하니, 아베정부의 간교함이 고노담화를 욕보이고 있다.

지난 6일 유엔 인권문제의 최고 수장인 필레이는 위안부문제에 대해 “위안부로 알려진 피해자들은 2차 대전이 끝나고 70년이 가까운 지금도 계속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며 “사법정의와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계속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당면한 현재문제”라 지적했다.

일본은 UN의 인권수장이 분노하듯 토해내는 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사히와 고노의 양심은 세계의 양심이다. 아베와 일본정부는 왜, 가까이 있는 양심의 소리를 못 듣는가. 그래도 일본을 지탱해 주는 것이 있다면 고노와 아사히와 같은 양심의 소리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고노와 아사히, 일본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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