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퇴 중간평가

2014-08-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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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이중언어교사 1호)


교단을 떠난 지 꼭 15년이 되었다. 나와 동갑내기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환갑이 지난 황태자에게 옥좌를 언제 물려줄까? 엉뚱한 비약을 해본다. 뉴욕시의 교사 은퇴제도는 연령과 상관이 없다. 전적으로 본인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종신 교사로 순직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뉴욕시에는 85세가 넘은 현역 교사가 여덟이나 있다고 들었다. 물론 교장으로서는 한명의 고참 교사의 봉급으로 고분고분하고 예쁘고 젊은 교사 두 명을 채용할 수 있으니 늙은 교사가 사직하기를 바라지만, 교사 평가에 하자가 없는 한 어쩔 수 없다.

조기 은퇴를 하고 또 다른 직업 분야로 뛰어든 진취적 50대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오랜 수고의 대가로 주어진 은퇴생활을 정말 보람 있게 보내고 싶어 한다. 자아 달성의 대단원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내 나름대로 계획했던 희망사항들이 얼마나 지켜졌나 중간 평가를 해본다.


희망사항 첫 번째, 독서는 고맙게도 아직 시력이 좋아 꾸준히 계속 하고 있다. 두 번째인 여행은 마땅한 동행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단체 여행한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희망사항 세 번째인 자원봉사는 한인 봉사기관들과 인연이 좀 닿아 기회가 제법 주어졌다. 뉴욕에 살고 있을 때였다.

뉴욕 봉사센터에서 노인들을 위한 기초 영어반을 맡게 되었는데, 수업 시간마다 교사도 학생도 같은 콩글리시 발음을 되풀이하며 콩글리시 폭소를 함께 하던 기억이 아득하게 되살아난다. 뉴저지로 이사 와서는 격이 좀 다른 문예반에 불려갔다. 그동안 수고하던 시인이 병환이 나서 그 자리를 메꾸는 일이었다. 국어 교사를 한 이력이 얼마간 도움이 되었다.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정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갔다. 성실한 준비가 요구되는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희망사항 네 번째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도전의 첫 목표는 컴퓨터 사귀기였다. 나는 적지 않은 수업료를 내가며 부지런히 컴퓨터 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들이 마련해준 컴퓨터 앞에 자주 앉았다. 원래 타이프도 못 치는 둔한 손가락이 영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곧 도전이었다. 어찌 어찌 이메일을 보내고 받을 수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나와 컴씨와의 관계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컴퓨터에 깊이 반했거나 컴맹에서 벗어나야 할 절박한 ‘필요’가 그때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란 분석을 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의 뜨뜻미지근하고 끈기 없는 타성이 근본 원인임을 잘 알고 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으면 뱉어버린다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 씁쓸한 미소를 삼켰다. 또 하나의 시행착오를 겼었다고 자위하고 있다.

내가 직접 손으로 쓴 종이 편지에 감동하는 친구도 있고, 이메일의 효능을 활용하고, 유럽에서 영화를 보라고 성화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참 축복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은퇴 중간 평가는 B+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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