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구촌의 전쟁과 괴질

2014-08-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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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 100년간 지구촌에 발병한 괴질 중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스페인독감일 것이다. 이 괴질은 1918년 1차 세계대전 때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에 이르는 목숨을 앗아갔다. 원인은 전쟁터 참호의 군인들에게 보급된 고기를 통해 전염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14세기 유럽을 초토화 시킨 페스트 괴질보다 훨씬 많은 목숨을 앗아간 병이라고 하니, 총칼보다 더 무서운 유행성 인플루엔자(influenza)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괴질은 현대에 와서도 잊을 만하면 창궐한다. 지난 10여 년 전에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그리고 얼마 전만 해도 조류독감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면서 지구촌은 그야말로 대 홍역을 치렀다.


마치 유행처럼 오고 가는 괴질 바이러스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근자에도 또 생명을 위협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해 지구촌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 바이러스의 명칭은 196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마르부르크 박사가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江)에서 발견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콩고, 가봉, 수단 등 서아프리카 나라들에서 급속히 번지고 있는 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자가 벌써 900명을 육박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백신 공급을 위해 세계은행(World Bank)이 확산 지역에 2억 달러를 긴급 지원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명성은 익히 알려진 대로 지난 2007년 콩고의 한 마을에서 전염된 사람들이 눈과 귀에 피를 쏟으며, 감염환자 264명 중 무려 186명이 사망했다. 이때 치사율이 70%를 상회했다고 한다. 감염자 대부분이 마을의 한 장례식에 참석한 후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급성 열성감염을 일으키면서 두통과 근육통, 전신 무력감과 탈진 및 발진, 그리고 몸의 출혈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괴질의 창궐은 묘하게도 전쟁의 시기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어쩌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독성 자체가 괴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는 미덕이 발현되는 지구촌이라면 공존공생의 아름다운 에너지가 흐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파괴를 목적으로 주변의 인간들을 마구 살상하는 전쟁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게 되면 지구촌은 좋지 못한 에너지로 더럽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과 미움 두 가지 심성을 갖고 있다. 이 중 사악한 마음이 지구촌을 지배할 때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괴롭히는 괴질의 창궐은 어쩌면 자업자득이 아닐까.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대량학살 때 대다수 독일인들은 옆에서 이를 수수방관했다. 그 결과가 살상에 가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때 지금 중동, 우크라이나, 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에서 작고 크게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 둔감해진 우리 자신의 의식이나 양심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우리 각자가 삶의 터전에서 전쟁과 같은 인생을 살다 보니 지구촌에서 타인들이 겪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는 솔직히 무감각해진 것이 사실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현자들은 이미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 전쟁과 괴질의 상관관계를 꿰뚫어 본 것 같다. 많은 예언자들은 전쟁과 괴질을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지구의 현실에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도처에서 나라와 민족이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괴질, 혹은 기근과 지진, 홍수 등의 대참사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지구촌 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도록 “지구는 한 마을이자 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오늘날 원자력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이한 괴질 하나 때문에 전 지구촌이 공포에 떠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2,500년 전 원자를 발견한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말이 실감나게 떠오르는 현실이다. “인간의 최대 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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