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명의 덫에 걸린 인간들

2014-08-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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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10년도 더 됐다. 모 교단의 선교지 동행 취재차 한국을 들러 몽골에 갈 때였다. 한국까지는 큰 비행기를 타고 갔다. 비행기가 커서 그런지 편안하고 안락하여 12시간이 넘는 탑승이었지만 큰 피로감은 들지 않았다. 또 큰 요동이 없어서인지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몽골행은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야만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객이 몇 십 명에 불과한 작은 비행기다. 작은 비행기를 별로 타 본적이 없었는지라 그냥 안심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고도가 높아지고 비행기가 바람이 센 지역에 도달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몹시 흔들렸다. 무사히 도착되게 해달라고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사람이 비행기를 발명한 것은 새처럼 날아보려는 의욕과 호기심이 발로였다. 항공역사에 의하면 미국의 라이트형제가 1903년 12월17일 세계 최초로 중항공기의 비행에 성공한 것이 시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란 비행체는 동생이 조종하여 총 12초 동안 36미터를 비행했었다.

1908년 미국의 G.H.커티스는 라이트 형제 이래 특출한 비행기를 설계조립 조정하여 미국과학상을 수상했다. 비행기의 실용개발은 1914년 일어난 제1차 대전이 불을 지피게 하여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고 1957년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 보잉 707이 미국에서 첫 비행 성공에 이어 1969년 초음속여객기 콩코드가 나왔다.

비행기의 개발로 지구는 하루 생활권에 접어들었다. 이대로 계속 개발된다면 얼마 안가 뉴욕에서 아침을, 파리에서 점심을, 서울에서 저녁 먹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잠을 자게 될 그런 날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 인간 문명의 성장이 얼마나 사람을 편리하게 몰고 가고 있는지 하루가 새로울 정도다.

지난 4월20일 비행기 바퀴에 숨어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까지 5시간을 날아간 16세의 한 소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부모와 말다툼을 한 후 화풀이로 비행장에 가서 비행기의 바퀴 홈(wheel well)에 들어갔다. 바퀴 홈이란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펴지는 바퀴가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하와이까지 날아갔다.

화풀이 치고는 대단한 화풀이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도중에 그는 의식을 잃었지만 다행히 목숨엔 지장 없이 구출됐다. 이건 하나의 해프닝이지만 비행기로 인한 사고는 날이 갈수록 점점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으로 인해 인간이 직접 피해당해야만 하는 모순이다.

금년 들어 항공으로 인한 사망자가 작년의 배가 된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엔 459명이 사망했다. 금년엔 991명이다. 말레이시아항공 실종으로 239명. 비행기의 잔해조차 못 찾고 있다. 또 같은 말레이시아 항공이 7월17일 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다 미사일피격으로 298명이 사망했다. 7월23일 대만 푸싱항공의 소형비행기.
악천후에 착륙을 시도하다 탑승객 58명 중 48명이 사망했다.

24일엔 알제리항공기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추락해 116명이 사망했다. 기체 결함이든, 미사일 공격이든 이젠 더 이상의 항공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 전에 집에 모든 짐과 서류를 깨끗이 정리해 두는 습관의 사람들이 있다. 만에 하나 있을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이란 걱정 때문에 그렇게 한단다. 비행기를 탈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타는 사람은 없다. 그냥 탄다. 아니, 타야 한다. 비행기 트랩을 밟았으면 그 때부터는 비행기에 모든 걸 맡긴 상태가 된다. 그러니 “무사비행이 되기를 위해”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을 편리하게 살아가게 하는 문명의 이기는 비행기뿐만 아니다. 자동차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문명의 이기가 죄 없는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데 있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어 놓고 이젠 그 문명의 덫에 걸려 인간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비행기사고도 그 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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