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14-07-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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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날씨도 더운데 지구촌에는 커다란 사건이 펑 펑 터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가자 지구의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1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격추되며 탑승객 298명이 숨진 참사가 일어났다.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교전 중인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통제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과 정부군이 격전을 벌이고 있고 시리아 내전도 식을 줄을 모르고 소말리아도 여전히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 되는 해로 오는 7월 28일은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에 의해 사라예보에서 암살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범슬라브주의가 팽팽하게 맞서 말 그대로 ‘유럽의 화약고’가 터져버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앞장서 주변국가의 땅을 넘보았고 1914년 한국은 이미 일제강점기였다. 1917년에는 중립을 지켜온 미국도 독일이 미국 선박 3척을 침몰시키자 참전했다.


런던, 파리의 기차역마다 출정 군인을 배웅하러 간 어머니, 아내, 자녀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다들 ‘조국을 위해서’하는 미명아래 온 세계는 광기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남자들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전쟁터로 나갔고 여자들은 군수공장으로 가서 소총과 대포와 폭약을 만들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18년 11월까지 4년간 벌어진 전쟁에 동원된 군인이 6,500만명, 전사한 군인 850만명, 후방민간인 희생자는 1,000만명, 이 전쟁의 댓가를 유럽은 수십년간 혹독하게 치렀다.1914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축도 라디오도 없는 시기였지만 마을의 악대가 축제날이면 흥겨운 음악을 연주했고 동네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인생을 즐겼다.여름이면 야외에서 낚시와 피크닉을 즐겼고 교회도 열심히 나갔다. 주일날 예배후에는 예쁜 모자를 쓰고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과 줄무늬 양복에 맥고모자를 쓴 남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환담했다.

하지만 전쟁은 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수많은 죽음, 고통, 피를 보게 했다. 차차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들었고 전쟁에 대한 환멸, 혐오감이 짙어졌다. 전쟁이 일어나면 고통 받고 힘든 것은 국민들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침대에 누운 환자가, 학교에 가던 소녀가, 해변가에서 뛰어놀던 소년이 폭격으로 숨지고 있다. 이들이 원한 것은 안락한 잠자리와 따스한 음식, 좋아하는 친구와의 놀이였을 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다가 휴가를 보내러 말레이시아로 가던 이들은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샤핑하고 해변가 파라솔 아래 콜라를 마시며 햇볕을 즐기려던 이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불귀의 객이 되었다.그냥 운이 나빴다고, 너의 삶이 여기까지라고 체념하기에는 억울하고 죄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가엾다. 왜 한번 뿐인 인생에서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런 가혹한 일이 생겨야 하는 지 호소하는 이들, 이 선량한 국민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주어야 하는가.

1916년 2월 21일 시작된 베르덩 전투는 10개월간 계속되면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생겼다. 프랑스의 소도시 베르덩에서 프랑스와 독일군이 치른 이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격렬한 전투로 알려진다. 베르덩 부근 전사자들의 묘소가 있는 보요새 벽면에 박힌 철판에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내 아들에게, 너의 눈이 감긴 날부터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마른 날이 없다’
간단하고도 통절한 이 문장은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이를 비롯, 사랑하는 사람을 전장에서, 테러로 잃은 모든 부모, 아내, 애인의 공통적 비애를 말해준다. 100년을 넘어선 슬픔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비극에 여전히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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