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승만 장례식에 바친 박정희의 조사

2014-07-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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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구(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7월19일은 이승만 대통령이 소천한지 49주기가 된다. 이승만 박사는 1965년 7월19일 0시35분 하와이 마우날라니 양로원병원에서 운명하였다. 남긴 유산은 평생 읽던 성경 한 권뿐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유해는 전 주한 미사령관 벤프리트장군이 마련한 특별기로 한국에 이송된 후,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했으며 박정희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조사를 지어 정일권 국무총리로 하여금 대독케 했다

“조국독립운동의 원훈이요, 초대 건국대통령이신 고 우남 이승만 박사 영전에 정성껏 분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드립니다. 돌아보건대 한마디로 끊어 파란만장의 기구한 일생이었습니다.


과연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역사를 짓고 또 역사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박사께서는 이제 모든 영욕의 진세인연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일제의 침략에 쫓겨 해외의 망명생활 30여 성상에, 문자 그대로 혹은 바람을 씹고 이슬위에 잠자면서 동분서주로 쉴 날이 없었고, 또 혹은 섶 위에 누워 쓸개를 씹으면서 조국광복을 맹세하고 원하던 것도, 그 또한 혁명아만이 맛볼 수 있는 명예로운 향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70노구로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그나마 분단된 국토위에서 안으론 사상의 혼란과 밖으로는 국제의 알력 속에서도 만난을 헤치고 새 나라를 세워, 민족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여 민주한국독립사에 제1장을 장식한 것이야말로, 오직 건국인만이 기록할 수 있는 불후의 금문자였던 것입니다.

이같이 박사께서는 선구자로, 혁명아로, 건국인으로 다만 조국의 개화, 조국의 독립, 또 조국의 발전만을 위하여 온갖 노역을 즐거움으로 여겼고, 또 헌신의 성과를 스스로 거두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 견지하신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항일반공의 뚜렷한 정치노선을 신조로 부동자세를 취해왔거니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사의 국가적 경륜이었고, 또 그중에서도 평화선의 설정, 반공포로의 석방 등은 세계를 놀라게 한 정치적 결단력의 역사적 발휘였던 것입니다.

박사에 대한 영원한 경의로, 그 유택을 국립묘지에서 가장 길지를 택하여 유해를 안장해 드리고자 합니다. 생전에 손수 창군하시고 또 그들로서 공산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바로 그 국군장병들의 영령들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수호신이 되셔서, 민족의 다난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위에 신의 가호가 같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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