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신론자의 기도

2014-07-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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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지난 6월 10일 플로리다 주 오시올라 카운티 의회에서 무신론자로 널리 알려진 데이빗 윌리엄슨 씨가 개회사를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기도의 형식을 취하여 화제가 되었다. 무신론자라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인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불러도 되는 것일까? 이 논의에 대하여 카운티 의회는 “개회사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오랜 습관이어서 특정한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용어이다”고 해석을 내렸다.(월스트릿 저널)

영어권 나라에서 God를 찾는 것은 일상화가 되어있다. O My God! 는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라는 뜻이 아니라 ‘저런!‘ 혹은 ‘제기랄‘ 이란 뜻이다. 남이 재채기를 하면 God bless you. 라고 말해 준다. 자기가 믿지도 않는 신의 축복을 비는 말은 물론 아니다. 한국인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신을 연상하지만 서양인의 God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일상용어이다.


미국이 낳은 저명한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박사는 핍박이 심할 때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두려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여러 날 계속되고 있다. 외롭고 무서운 밤이면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었느냐?’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말은 신의 물리적인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고 잠 못 이루는 밤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과의 접촉선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노래책(총 558곡 수록)인 찬송가는 그 대부분이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는 기도시(祈禱詩)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새 외래 종교인 예수교의 특색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물론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것이지만, 동시에 찬송을 되풀이 되풀이 노래함으로 하나님을 확인하고 또 확신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 것도 예배찬송의 의미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때때로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고 항의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신의 질(능력, 권세, 신성 등)을 조금이라도 가감(加減) 할 수는 없다. 내가 뭐라고 하든 그 분은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서에 계시된 신은 아니지만 우리 한국인의 조상들도 장독대에 물 떠놓고 ‘하늘’에 혹은 신령님께 빌었다. 하나님 신앙은 기원전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하나님 신앙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세계 각처에 존재해 있었다.

하나님은 하루도 일출(日出)을 잊은 일이 없고, 한 해도 꽃 피게 하는 일을 잊은 일이 없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들 뿐이 아니라 덤으로 일몰(日沒)의 아름다움도 주셨다. 장미를 만들 뿐이 아니라 그 황홀한 색깔과 향기까지 덤으로 주셨다. 하나님은 시인이시다. 아기의 울음도 새의 노래도, 피도 소리와 바람 소리도 하나님의 예술이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나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포기하거나 해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욕의 샘이시며 능력의 근원이 되십니다. 새들이 당신을 노래하고 나무와 별들이 당신을 증거합니다. 나는 나의 힘으로 안전을 얻을 수 없고 당신만이 나를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천체의 조화가 당신의 창조를 말해줍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의 팔에 안기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순간마다 샅샅이 당신이 감찰하심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인간이 당신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당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나를 놓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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