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팎과 균형

2014-07-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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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보면 안팎은 사물이나 영역의 안과 밖, 마음속의 생각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부부 등으로 뜻이 기록돼 있다. 작년 4월에 감나무 두 그루와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생각치도 못했던 귀농 생활이 시작되고 농사에 전념하게 되었다.

30년간 봉직한 회사에서 당시로는 적지 않은 나이인 63세에 정년퇴직을 하고는 아내를 외조 하는 전업주부로 살아온 게 어느 덧 열 한해가 지나고 있는데 요리만 제외하고는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는 팔자에도 없는 집사가 된 것이다.
제법 큰 규모의 텃밭 세 개를 관리하다보니 하루 중 밭을 가꾸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4시간에서 5시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밭에서 사는 셈이다. 말만 전업주부가 아니고 안팎으로, 안에서는 주부요, 밖에서는 농부인 제2의 삶을 사는 꼴이다.

젊어서 즐기던 골프는 라운드를 끝내는데 보통 5시간이 걸렸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그날 컨디션과 스코어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곤 했는데 밭에 뿌린 씨가 돋아나고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팍팍 솟구치는 엔돌핀이야말로 구슬땀을 흘린 대가를 받는 것 같아 꿩 먹고 알 먹는 다는 말이 이 경우가 아닌가 한다.


사슴이 새끼를 세 마리 네 마리씩 대동하고 출몰하는 지역이어서 5피트 높이의 철책을 세우고 출입문까지 번듯하게 제작을 한, 외부에서 봐도 그럴듯한 텃밭의 면모를 갖춘 셈인데 이게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다. 밭 안쪽에서 생생하고 힘차게 차 올라오는 오이, 호박, 토마토들이 새 순이 올라 온지가 어제 같았는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어느덧 백만장자는 물론 호화저택이 부럽지 않으니 팔순을 목전에 둔 75세 젊은이에게는 제2, 제 3의 생동력 넘치는 삶을 구가하는 생의 장을 찾은 셈이기도 하다.

이게 웬 텃밭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실은 우리 인생도 안팎의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하지 않고서야 어디 올바른 생을 보냈다거나 산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싶어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도 또한 기쁨이요, 득이 아닐 수 없다. 농사야말로 안과 밖이 다르거나 거짓이 있을 수 없지 않은 가! 그야말로 정직하게 뿌리고 가꾼 대로만 거두니까 하는 말이다.

불문에서도 수행을 해서 남의 사표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안과 밖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거라고 한다. 소위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을 위시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군상들, 자칭 성직자, 자선사업가, 교육가라고 행세하는 언행일치와는 거리가 먼 허상만 쫓는 무리들이 국가와 사회에 끼치는 폐해가 얼마나 지대한 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텃밭의 군단을 심은 순서대로 보면 감나무(2), 복숭아(1) 체리(2), 블루베리(2), 토마토(8), 방울토마토(3), 오이(14), 단호박(6), 애호박(8) 딸기(3),아스파라거스 (10), 청양고추(24), 쑥갓(12) 쥐눈이콩(133), 당근(50), 상추, 로메인, 복초이, 부추, 파, 마늘, 머위, 적갓, 참나물, 들깨, 미나리 등이다. 사진에서 보듯 싱그럽고 푸르른 텃밭의 자태가 참으로 신선하고 아름답다.

전태원(자유기고가/ 하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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