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둥지 틀기

2014-07-16 (수)
크게 작게

▶ 살아 가면서

▶ 강신용

새터민은 낯선 느낌의 사람들이다.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미국 건국의 조상들도 아메리카의 새터민이었다. 우리들도 한때는 새터민으로 자리 잡고 살기까지 많은 고통 속에 여기에 도착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새터민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를 새터민처럼 낯설게 보고 있다.

6.25 총소리가 멈추고 쩐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정주영 회장이 소 판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한 성공사례는 현대판 전설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새털 같은 청운의 꿈을 안고 시골 촌구석에서 서울로 가출하던 젊은이는 한 시대의 로망이기도 했다.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사하던 생존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 한국에는 젊은 귀농이 유행이란다. 휘황찬란한 도회지의 생활에서 존재감을 잊어버리고 지쳐버린 젊은 장년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건강한 땀 속에 행복을 찾는다고 한다. 해 뜨면 아침을 열고 해지면 저녁을 닫는 태양시계를 보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철따라 씨 뿌리고, 김 메고, 햇볕을 벗 삼아 일하는 새내기 농부가 되는 것이다. 익숙하지는 않아도 슬로우 라이프를 배우며 삶의 터전을 닦는 것이다.


우리의 미국생활도 새터민이나 진배 없다. 이민 와서 미국 시민으로 행세한들 그들은 겉모양만 보고 아시안이라고 부른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은근한 냉대의 눈빛은 슬그머니 피하고 거친 말은 귀 닫고 듣는다. 고국을 떠난 십수년에 미국의 새터민으로 겨우 자리는 잡았다. 2세대가 지나 조국의 한국인들은 한국 말하는 외국인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마치 북한 사람이나 미국 동포들이나 똑같이 외국인으로 대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에는 약 700만명의 해외 동포가 있다고 한다. 각자의 나라에서 영주권을 받고 자식의 탯줄을 묻으며 조상의 산소를 쓰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 물설고 말 설은 객지생활은 청년 정주영 시절이나 우리들의 이민 초기나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우리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막노동 밖에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이민 100년 동안 외롭고 고통스런 새터에서 피눈물을 흘리면 신화를 만들고 있다.

사막에는 회전초라는 잡초가 자란다. 회전초는 뿌리를 포기하고 이리저리 공처럼 굴러다니는 잡초덩어리다. 사막의 열기 속에 돌고 돌다가 물기를 만나면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이 강한 보잘 것 없는 잡초덩어리다. 멕시코 촌구석에도 아프리카의 오지에도 잘 살아 보자고 돌고 돌아 정착하는 것이 한민족이라고 한다. 뿌리째 뽑혀서 몸통으로 굴러서 그렇게도 물설고 낯 설은 이국생활은 사막 속의 회전초와 너무나 닮은꼴이다.

지난 불경기에 둥지가 위태롭다. 약육강식의 터전에서 겨우 숨 돌릴 만한 둥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방앗간 옆 참새동네를 보는 독수리의 눈길이 매섭다. 혹시 매 잡는 여우라고 자만하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겨우 만든 둥지다. 깨지고 말면 새로 지을 청춘도 야망도 다 지치고 시들어버렸다. 허리띠는 졸라매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둥지를 둘러본다.

방랑자의 가슴이 따뜻해 온다. 손길은 거칠어도 일터는 아름답다. 회전초마냥 돌고 돌아 물기를 만났으니 다시 뿌리를 내려야겠다. 크게 눈뜨고 저 멀리 바라다본다. 따뜻한 손 기운으로 둥지를 감싼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