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커뮤니티와 오염된 한국

2014-07-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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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신세계’는 한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소재로 자주 등장했던 조직폭력계의 이야기를 한 단계 더 심화시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국판 무간도’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한다. 무간도(無間道)는 2002년 개봉한 홍콩의 범죄 스릴러 영화로 범죄조직과 사법계의 묘한 관계설정이 재미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조폭이 발전해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에 한 경찰관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임무를 띠고 잠입해 자그마치 8년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범법을 저지른다. 2인자의 위치까지 올라간 그는 결국 조폭의 의리를 버리고 경찰 상부의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깊은 회의를 느낀 나머지 결국 경찰조직을 배신한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은 아무리 악을 소탕하고 법을 수호하려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공무라도 어느 순간에는 변질되어 제거대상인 악과 결탁하여 동질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영화 같은 일이 실제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졌다. 형은 부장검사, 동생은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소위 ‘잘나가는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둘 다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형은 7년 전 골프장 운영권을 뺏기 위해 골프장 사장을 납치 감금해서 살인공모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었다.

동생인 김형식 현 서울시의회 의원은 친구와 공모, 수천억 원대의 재력가를 청부 살해를 교사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고 하니 가히 용감하고 무서운 형제들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서울시의회 김명수 의장은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마치고 나오다 체포된 일이 있다. 고층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철거업체로부터 큰 액수의 금품을 받은 혐의였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자랑하며 미국인들에게 선전했던 ‘강남 스타일’의 무대인 서울특별시의 비리 현장이다. 아시아 최고의 수도라고 한국정부가 홍보하는 그 서울시의 의회 의장과 의원이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사건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이런 처신으로 처벌 받는 한국의 고위공직자들이 비단 서울시의회 의원들만이 아니다. 위로는 성접대, 성희롱, 뇌물수수 등으로 파면되거나 구속된 검사나 국회의원들, 아래로는 지방자치 대표들이 심심하면 고발되고 처벌됐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공언한 국가개조는 어찌 보면 말잔치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 전체가 천박한 공직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흙탕물 같은 현실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국가가 개조된다는 것일까?

문제는 우리 한인사회가 한국의 이런 관습에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잠시 머무르는 한국인이 많은 지역은 한국의 고질적인 교육문제, 음주문제 등으로 항상 잡음이 많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미국 여러 도시에서는 한국에서 온 책임자와 현지에서 고용된 1.5세 직원들과의 마찰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현지 직원들이 한국말을 잘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무리한 야근이나 술자리 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는 한국에서 ‘원정’나온 여성들의 술집경영, 성매매 까지 있어 미국사회에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건전하게 살아온 한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정신인 정직한 노동과 그에 따른 깨끗한 보상에 대한 믿음으로 한평생 살아온 한인 커뮤니티의 터줏대감들은 이런 상황에 아연실색한다. 또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고 한인 1.5세, 2세들이 해마다 모국방문을 하고 있는데 이 순수한 젊은이들이 변질될까 우려스럽다.

밤이면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서울의 모습은 표면상으로는 번드르르하지만 그 속은 이미 순수함이 상실된 지 오래이다. 이제 한국은 건전한 정신문화가 실종된 퇴폐 만연한 온상의 현주소가 되었다. 한국 드라마나 노래 등에 심취한 한인 2세들이 과연 이런 오염된 한국의 상황을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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