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 일병의 ‘왕따 일기’

2014-07-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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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노총각이 노처녀 심정 더 잘 안다고, 며칠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부전선의 임병장의 총기난사 사건도 왕따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옛날, 김일병이 근무했던 중부전선에서도 가끔 왕따 사고가 났었다. 그건 김일병이 당한 왕따 성격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김일병이 예수라도 믿지 않았더라면 실탄 장진된 , M1소총도 가진 터라 그 누구도 사고치지 말란 법도 없다.

왕따가 되는 이유야 많겠지만,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군대에서 왕따 당할 확률이 제일 높은 것은 식사 때마다 기도해야 하는 부담감, 휴식 때마다 같이 담배 못 피우는 이질감, 회식 때마다 같이 술 먹지 못하는 동질감에서 소외된 군대생활 따위들로 전우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절시켜 먼저 외톨이가 된 후 서서히 왕따로 반전되는 수순을 밟는다.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소문낸 김일병의 경우가 그랬다.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최하 졸병인 김일병이 보초의 눈을 피해 위험을 무릅쓰고 민통선 마을에 들어가 그 무거운 술통 짊어지는 일은 고사하고라도 전우들은 김일병이 사온 술 먹으며, 철모 두들기고, 흥에 도취한 그 시간에, 김일병은 경건하게 사이다 병 앞에 놓고 성자처럼 처량하게 앉아있는 모습이야말로 실로 외롭게 벌 받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회식이 무르익어갈 때쯤 해서 내무반장, 임병장이 농담반 진담반 혀 꼬부라진 소리로 “김일병, 네가 무슨 전도사냐 성자냐? 술 안 먹는 건 자유지만 우릴 위해 안주삼아 찬송가 한 장 불러봐!” 자칫 명령처럼 들렸다.

그건 고참의 명령이기도 했지만 기회는 이때다 싶어 김일병이 그때 부른 노래는 Adams의 ‘거룩한 성’이었다. 그동안 서러웠던 왕따 스트레스를 내무반 떠나가도록 고함지르며 찬송을 부른 후, 아멘 했는데 이게 웬일일까. 내무반이 잠시 숙연해지더니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하며 앵콜을 외치는 것이다. 연달아 단골 레퍼토리 ‘내 주를 가까이’를 부르며 회식의 피날레를 장식했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회식 때만 되면 김일병이 사온 막걸리에다, 김일병이 부르는 찬송가로 늘 그렇게 은혜스런 회식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어느 주일날 아침이었다. 내무반장 임병장이 들어오며 거룩한 말씀 하셨다. “너희들 오늘, 제설작업하지 않아도 좋으니 모두들 김전도사 따라 교회에 가라”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김전도사라 함은 김일병을 두고 일컫는 말씀이었다. 드디어 전도사로 둔갑한 김일병은 “나를 따르라”는 영적 리더십의 운전대를 잡았다고 잠시 좋아했으나, 김일병의 뇌리를 때리는 말씀이 스쳐갔다. 그건 “네 능력이 약한 데서 강하여 짐이라(고후 12: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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