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름방학l 아이들이 바빠야 할 때

2014-07-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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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자(교육심리학 박사)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한국과 달라 미국의 여름방학은 거의 장장 석 달이나 된다. 이 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다라서 9월 달에 닥칠 새학년이 학술적으로 어느 시발점에서 시작될 지가 좌우되고, 나아가서는 아이의 미래교육의 향방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학이 되어 기쁨의 함성을 터뜨리며 교정을 뛰쳐나온 아이들도 곧 자유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Now what?(지금은 뭘 하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이 자유로운 시간을 감당해야 할지 당황스러워진다. 여름방학은 미리 부모와 아이가 머리를 맞대어가며 치밀하게 계획해야 하며, 차질 없이 실천되어야 한다. 일 년 내내 학교에서 공부에 시달렸으니 여름방학 동안만이라도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생각은 아이에게 학술손실 및 나태한 생활태도의 습득이라는 매우 불리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마냥 허송하는 긴 시간의 무료함은 아이를 무기력하게도 짜증스럽게도 우울하게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시각과 태도는 다양하다. 어떤 부모들은 여름방학을 아이의 학술, 예술, 스포츠, 견문을 향상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필요한 뒷바라지를 한다. 또 어떤 부모들은 여름방학을 학교대신 메꾸어 주어야 하는 공백 기간으로 생각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느낀다. 당장 내일부터 아이를 보살펴줄 사람, 혹은 맡길 데를 찾아야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우리 한인사회에는 많은 양질의 학술, 미술, 음악 학원들이 있고 곳곳에 태권도 도장이 있어서 뒤쳐진 ESL실력, 수학능력 혹은 미비한 대학입시시험 준비를 보강하거나, 미쳐 빛을 보지 못한 숨은 예능 혹은 스포츠 재능을 발굴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여름방학동안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어 및 한국문화 강의를 수강하거나 이곳 미국대학에서 제공하는 고등학교 GPA를 올릴 수 있는 특수과목을 수강하는 것도 보람 있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서머 프로그램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행하게도 미국사회에는 돈 안들이고 혜택 받을 수 있는 서머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시영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독서 프로그램, 공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여름 성경학교 그리고 언어발달 혹은 사회성 발달이 부진한 유아(세살미만)들을 집에 까지 와서 치료해주는 Early Intervention(조기치료/교육- 프로그램 등이 바로 그것이다. 부모들이 열심히 찾아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무료로 제공하는 양질의 서머프로그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맞벌이 이민 부모들에게는 여름방학이 즐거움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자칫 아이를 하루 종일 노부모님께나 배경 모를 외국인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밖에는 낫지 않은 방법이라 하겠다. 또 거친 세파에 휩쓸리기 쉬운 청소년을 교육상 부적절한 동네에 있는 SAT학원에 등록시킨다면 그가 거기서 만난 불량배와 어울려 거리를 배회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되고 부유한 가정에서도 부모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삼삼오오 모여 술. 담배. 마약에 까지 손을 대는 사례도 있다. 또 우리 아이들 중에는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방에 틀어박혀서 인터넷이나 게임에 심취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러다보면 점차 현실감을 잃고 공상의 세계에 몰두하기 쉽다.

아이들은 혼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무료한 시간을 많이 가져서도 안 된다. 만일 집에 방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라면 아이를 아예 부부가 경영하는 가게나 기타 생활현장으로 데리고 나가서 나이에 맞는 일을 거들게 하는 것을 고려해 보기를 권한다. 부모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며 동고동락하는 것처럼 부모자식 관계를 따뜻하고 끈끈하게 밀착시키는 일은 없다.

가을학기 초에 학교에 나가보면 여름방학 석 달 동안에 학술적, 정서적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여 돌아오는 아이도 있고, 지난 6월 달에 달통했던 구구법을 몽땅 잊어버리고 돌아오는 아이도 있다. 또 어느 새인가 악보도 읽을 줄 알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반을 두드릴 줄도 알게 되어 돌아오는 아이도 있고, 여름땡볕아래서 봉사활동으로 갈색이 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청소년도 더러 만난다. 긴 여름방학을 바쁘고 보람 있게 보낸 우리아이들이 기특하고 든든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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