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서 부닥치고 살자. 그리고 결과는 맡겨버리자

2014-07-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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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현(신부)

팰팍에 본당신부로 부임했더니 팰팍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대대로 이곳 본당신부가 채플린 역할을 했다며 나보고 계속 역할을 맡으란다. 팰팍은 한국 커뮤니티가 생기기 전 유명한 이태리 타운이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경찰과 소방서 뿐 아니라 신도들도 내가 당연히 채플린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마음속 한구석 자꾸 주눅이 든다. 생긴 것도 별 볼일 없고 영어도 혀 꼬부라지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려운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나 하며 자신 없었다. 신부만 했으면 됐지 왜 자꾸 별 것 다하라고 강요를 하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원망도 했다. 나는 은근히 열등감이 크다. 어릴 때부터 항상 경쟁 속에서 비교를 받으며 자랐고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하는데 하면서 자란 환경이 나이가 50이 넘어서도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얼마 전 팰팍 경찰들이 총격전 끝에 현장에서 범인을 사살했다는 이야기가 지역을 뒤 흔들었다. 담당 경찰들이 엄청난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와우! 내가 만약 불려갔다면 뭐라고 위로를 하고 뭐라고 말을 하나... 우선 나를 부르지 않으니 안도감부터 든다. 또 한편으로는 나를 부르지 않은 사실이 기분 나쁘다. 그렇다고 내가 가서 먼저 나서서 위로를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대충 말이 없으니 속으로 안심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무시하나 하는 묘한 상반된 감정도 든다.

10여 년 전에 처음으로 부제가 되어 본당신부님이 장의사에 기도를 하러 가라고 말씀하셨다. 신학생 시절 실습으로 몇 번 쫓아 가봐서 미국식 장례의식에서는 관을 열어놓고 가족들이 둘러서서 죽인 이를 들여다보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정말 거기로 들어 갈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마치 호랑이 굴에 죽으러 들어가는 듯 너무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장의사 건물을 몇 번 돌고 돌다가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다 길을 잃었다고 둘러댈까 어쩔까 망설이기까지 했었다. 겨우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장례예식을 마친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올해 메모리얼 데이에 새벽 일찍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추모의식이 있으니 체플린으로 나와서 기도를 하라고 정식 요청이 들어왔다. 그리고 오전에는 타운전체 행사 시작 때 가톨릭 본당신부로서 축성 기도를 하라면서. 전에 있던 타운에서는 소방서 건물을 새로 지었다며 와서 성수를 뿌리고 축성을 해달라고 해서 간 경험은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9.11 추모제를 하면서 기도를 하라고 해 불려갔던 적도 있다. 한 미국신자가 유태인하고 랍비 앞에서 결혼을 하는데 나보고 유태인 회당에서 기도를 하라고 해서 간 적도 있다.

돌아보면 ‘참 어떻게 내 인생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변했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미국에서 살아가는 인생 혼자서 우리끼리 문 닫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추스려 본다. 두려워서 문 걸어 잠그고 편하고 쉬운 것만 골라 하고 내 하기 좋은 말만 찾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게 아닐 바에는 가서 부닥치고 살자! 그리고 결과는 맡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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