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까기, 드리블, 동전치기

2014-07-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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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꼼수는 일종의 속임수이다.
바둑에서 꼼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대방을 꼬이는 술법이다.

내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수인 것이다. 그래서 꼼수는 원래는 안 되는 수지만 상대를 속이기 위해 만드는 수란 뜻이다. 꼼수의 사전적 정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다. 쩨쩨하다는 치사하다, 잘다와 유사한 의미이니 꼼수는 치사한 수단이나 방법과 같은 말이다. 치사하다는 명분이나 명색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쫓는 다는 얘기다. 결국 꼼수는 좋은 뜻으로 해석될 수 없는 단어다.


바둑에서 ‘꼼수를 뒀다’는 말을 흔히 쓴다. 정수나 정석이 아니라 상대방이 미처 눈치 차리지 못하고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두는 수거나, 큰 국면을 보지 못하고 살기에만 급급해서 두는 수를 꼬집는 말이다. 위기탈출을 위한 비책으로 사용되면 기사회생은 물론 운 좋게 상대방이 꼼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면 판세까지 뒤집을 수도 있으니 비록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꼼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즐겨 읽고 자기를 만든 것이라고 했던 손자병법도 예외는 아니다. 손자병법의 줄행랑으로 유명한 36계인 ‘주위상(走爲上)-도망가는 게 상책이다’도 꼼수의 일종이다. 또한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넘는다’,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향해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한다’,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가슴에 비수를 숨기고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한다’, 제17계 ‘포전인옥(抛塼引玉)-미끼를 던져 유혹한다’ 등도 정법보다는 꼼수에 가깝다.

최고의 역사소설인 삼국지에도 상대방들이 걸려들기를 바라는 ‘신묘한 계책’이 자주 등장한다. 수세에 몰리던 판세를 한 쾌에 뒤집는 성공적인 꼼수는 기발한 한 수의 ‘묘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손자병법이나 삼국지가 최고의 병법이고 역사적 소설로 인정받는 것은 이런 꼼수보다는 정수와 정공법이 훨씬 많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한인사회에 살면서 가장 자주 ‘꼼수’를 접하는 곳은 골프장이 아닌가 싶다.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불리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동반자의 눈을 속이는 ‘꼼수’를 쓰는 골퍼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꼼수로는 OB 지점 근처에서 공을 슬쩍 떨어뜨려 벌 타를 줄이는 ‘알까지’, 공을 툭툭 건드려 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드리블’, 남들보다 먼저 그린에 도착해서 공 위치와 무관하게 홀 근처에 마크하는 ‘동전치기’ 등이 있다. 또한 핸드웨지와 풋웨지를 즐겨 사용하는 터치플레이 골퍼들의 꼼수도 있다. 이는 샷을 하기 좋은 자리로 손과 발을 이용해 볼을 옮기는 습관적인 볼터치를 말함이다. 이처럼 골프 라운딩을 하다 보면 꼼수의 부정행위를 일삼은 골퍼들이 제법 많이 접할 수 있다.

부정행위를 일삼는 골퍼들도 꼼수가 잘 통하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고 한다. 꼼수 후에는 마음이 불편하고 찜찜해서 오히려 정석 플레이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자주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꼼수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중독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볼을 조금이라도 만지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한 볼터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중독과 같은 현상 말이다.

골프에서 꼼수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꼼수를 자주 사용하다보면 동반자 모두 다 알게 되고 남들 눈에 다 보이는 꼼수를 혼자만 묘수(?)라고 여기면 그 꼼수는 이미 악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꼼수를 쓴다면 동반자의 따가운 눈총을 벗어날 수 없고 왕따로 낭패 보기 십상인 것이다.

골프는 에티켓, 매너, 약속 등을 중히 여기는 신사스포츠다. 정신에 따라 좌우되는 멘탈 게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과 자율을 기본으로 하는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꼼수는 정수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골프의 계절이다.꼼수로 이기려 말고 정수로 즐기려 하면 골프가 재미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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