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침묵의 힘

2014-07-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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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

날만 새면 자기 스승을 중상모략하고 다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이 어느 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승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다. "선생님을 욕되게 한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용서해 주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베개를 가져오너라." 청년이 베개를 가져왔다. 스승은 베개를 뜯은 다음 그 안에 있는 깃털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청년이 말했다. "이제 제 죄가 다 씻어졌습니까?"


스승이 말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있다. 가서 날아간 깃털을 다시 찾아 오거라." 청년이 황급하게 말했다. "스승님,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요. 바람에 날아간 깃털을 볼 수도 없습니다."

스승은 말했다. "바로 그거다. 네 입으로 나간 중상모략으로 인해 받은 아픔과 상처는 다시 고쳐보려고 해도 이미 늦었네. 바람에 날아간 깃털을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다시 회복시킬 수 없는 일이 되었지. 침묵의 언어부터 배우게."

스위스의 위대한 신학자였던 조나단 래버터는 말했다. "확실치 않다면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얘기를 하지 말라. 확실하다면 네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얘기를 해야 하는가를 네 자신에게 다시 물어보라."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가. 그 말이 너로 인해 끝나버리도록 해라. 그러면 아무도 너를 사로잡지 않으리라.”

누가 말을 헤프게 하는가. 내면이 비어있는 사람, 생각이 적은 사람일수록 말이 헤프다. 보라. 꽉 찬 수레에서는 소리가 안 난다. 빈 수레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므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사려 깊게 정제된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침묵의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약점까지 꾹 눌러 참고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리더의 자격이 있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능력은 경이롭다. 말을 금은처럼 아끼고, 긴 침묵으로 사고하고 깊은 묵상으로 정제된 말을 사용할 때, 그 침묵의 언어는 강한 힘이 되고 지혜가 된다. 이스라엘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일찍이 이 비결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모세는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말을 삼가고 조용한 곳으로 나가 하나님과 독대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침묵은 소리 없는 언어다. 이 세상에 침묵의 언어만큼 놀라운 힘을 가진 비언어적 언어(non-verbal language)는 없다. 어떤 말이든지 침묵과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말은 허공을 향해 흩어져 버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의 존재성은 침묵을 배경으로 한 언어가 발성될 때 빛을 발한다. 침묵은 영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과 성인을 보라.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먼저 침묵하는 법부터 배웠다.


침묵은 도피 행위나 폐쇄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도록 개방하고 비우는 능동태다. 내가 잠잠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시도록 내어 맡기는 신앙 행위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새가 잠깐 웅크리듯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웅크리는 성화의 시간이다.

당신은 진정 리더인가. 말 많이 하지 말라. 말 하려거든 침묵을 배경으로 한 말을 하라. 다윗 시편을 보면 침묵을 의미하는 ‘셀라’(Selah)가 71번이나 나온다. 깊은 침묵을 배경으로 한 까닭에 다윗의 시편은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든다. 침묵의 언어를 예찬한 피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말이라도, 침묵의 배경에서 나오게 되면 언제나 새로운 의미로 나타난다. 말은 침묵에게서 활기를 얻고, 말 자신으로 인해서 생긴 황폐를 침묵으로 정화시킨다.” 정화의 기능이 빈약한 반면 이기주의적 화술에 능통한 정치인들이 이 말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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