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신의 세월 속도는…’

2014-06-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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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세월 한 번 참 빠르다.어느새 한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물처럼 흐른다는 세월이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러다보면 어느 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게 될 것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면, 나머지 절반은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는 느낌이 반복되곤 한다.

이 같은 느낌은 한 해가 지나가는 속도뿐 만은 아니다. 스포츠 경기도 아쉬움이 남거나 승부가 아슬아슬할 때는 후반이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국과 알제리 월드컵 2차전서도 그랬다. 3대0으로 진 전반전은 지루했지만 2-1로 이긴 후반전 말미는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할 정도로 너무 빨리 끝난 것처럼 말이다.
연휴나 휴가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연휴 첫날은 아직 남은 날들로 여유가 있지만 다음날만 지나도 어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출근을 걱정하곤 한다. 1주일 휴가 역시 그렇다. 초반에만 해도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이, 절반이후부터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낯선 곳으로 자동차 여행을 할 때도 똑 같은 거리임에도 갈 때는 멀게, 올 때는 가깝게 생각되는 것 또한 더 빨리 가는 것 같은 후반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후반이 가장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은 아마도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자신의 인생절반이 언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은 매 한가지 일게다. 그래서 세월은 나이 숫자의 속도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10대는 10마일, 30대는 30마일로 세월이 가고 50대와 70대는 50마일과 70마일로 세월이 흐른다는 말이다.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간다고 말하는 걸까?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박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겪는 일 중 강하게 인상을 받은 일련의 사건들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어렸을 때는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많은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할만한 사건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첫 입학의 어색함, 첫사랑의 설렘, 입사 첫 날의 긴장감, 첫 결혼의 행복감 등의 다양한 첫 경험은 너무나 강렬하여 기억과 저장 과정이 길다. 그 때는 사소한 변화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첫 체험보다 익숙함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추억거리가 줄면서 세월이 금세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시간을 살아온 만큼의 기간과 비교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질수록 시간을 점차 빨리 가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이론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의 “열 살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길게 여기고, 쉰 살 사내는 50분의 1로 짧게 여긴다”는 말처럼 열 살이면 1년의 길이는 전체 삶에서 10%를 차지하지만 쉰 살은 1년이 전체 삶의 2% 밖에 되지 않게 생각한다는 논리다.

그럼, 삶을 좀 알만한 나이가 되면 세월을 다소 천천히 가게 할 수는 없을까?
그 답은 ‘기다림을 많이 만들면 가능하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소풍날은 ‘몇 밤 남았느냐?’고 셀 정도로 천천히 오고, 제대 말년 병장의 한 달은 1년처럼 길게 여겨지는 것처럼. 결국 기다리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월이 천천히 가는 느낌으로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남아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에 점점 조급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인생의 종착시간은 아무도 모르기에 남은 날들을 잘 준비하면 시간에 대한 느낌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당신의 세월 속도는 얼마인가? 하루라도 더 가기 전에 스스로 자신이 느끼는 세월의 속도를 측정해보자. 더불어 세월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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