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세기의 동화

2014-06-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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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1991년의 이야기니까 틀림없이 20세기의 동화다. 필자는 낯선 거리 걷기를 즐긴다. 새로운 건물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런 건물이 있고, 부지런한 집주인이 잘 가꾸어서 보기 좋구나. 창문의 커튼, 창가의 화분들……. 도대체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저 가게 쇼윈도의 디자인은 누구의 작품일까.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를 하였을까. 등등 생각할 자료를 던져주기는 여염집이나 가게거나 똑같다.

어느 날, 뉴욕시 동쪽 50가 부근을 걷다가 보통 살림집 건물에 떳떳하게 학교 간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살림집이 학교라고? 더 놀라운 것은 필자가 어느 틈에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간 일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분은 학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고...부럽습니다. 저도 학교를 가지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분한테 간단히 설명하였다.


한국학교 수효가 늘어가는 현상, 교사들이 상호간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설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렸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필자는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그가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더니 책상서랍을 열고, 열쇄 세 개를 꺼내 주었다. 정문, 사무실, 2층 교실 열쇠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당장 렌트 없이 사용하라는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1991년 봄 3개월 동안 가칭 ‘뉴욕한국교육대학’의 실험기가 있었다. 토요일 우호 3시부터 6시까지, 그 학교에서 교육강의를 제공하였다. 과목은 당시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선정하였고, 강사는 이론과 실제를 두루 설명할 수 있는 분, 학생들은 둥그렇게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하였다. 예상외로 학생들은 20명 내외였고 출석률도 좋았으나 3개월 후에 종강식을 가졌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필자의 계획을 오해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개교한 뉴욕한국학교가 교장 없이 개교한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니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행정이나 직책에 거의 관심이 없다. 오직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있다.

개교식까지 교장직을 거절했다가 그 해 11월11일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교장직을 맡은 후, 36년간 이를 담당하였다. 그런 사람이 교육대학 학장을 꿈꿨겠나. 그 때 오해하셨던 분들이 필자의 계획을 알게 된 것은, 3개의 열쇠를 반환한 후의 일이다. 교육강의 실험 결과는 성공하였고, 친구들에게는 오해를 샀고, 드디어 학교는 문을 닫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0세기의 산타클로스를 만난 일이다. 그는 분명히 그 학교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즉석에서 학교 열쇠 셋을 내주다니…그가 사람을 믿는 마음을 본다. 또한 그 도움의 크기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감명을 받은 사람은 필자이다. 그를 만난 이후 필자는 삶의 목적이 더 확실한 그림을 그린다. 다른 사람을 믿는 마음, 돕는 마음, 도움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을 골고루 갖춘 그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동화는 대개 해피엔딩인 것이 특색 중의 하나이다. 주로 나이 어린이들이 읽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어른도 동화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 동화에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허무맹랑하지만 무엇인가 꿈을 갖게 한다. 끝맺음이,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그 보상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알린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종말이 좋아서 마음이 편하다. 비록 우리들의 삶과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화를 믿고 살고 싶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요즈음 여러 단체에서 한국학교 교사 교육을 시작하였다. 교육의 성패는 오직 교사의 질에 달렸기 때문이다. 일차적인 실험은 이미 20여 년 전에 끝났고, 지금은 성공적인 방법으로 교사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그 옛 학교의 겉모습을 보러 가서 깊이 머리를 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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