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선교사.교사이자 내 인생의 길잡이

2014-06-27 (금)
크게 작게

▶ 뉴저지한국학교 김은자 초대 교장선생님

이경희<수필가/포트리>

1985년 8월, 한국에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 사표를 내고, 이민의 길로 미국을 향해 동생 집에 도착하였다. 나는 지인의 추천으로 9월 어느 한국학교의 개학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한국학교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으나, 이 미국 땅에 한국학교라니, 도착하여 대강당에 모여 앉은 아이들, 학부모님들, 모두가 생소한 모습들인데, 개학이 시작되고 애국가를 부르는 시간에 나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속에서 미국 속에서의 나의 운명도 이미 결정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가을 학기에 국어 교사로 부임하여 토요일 마다 우리 자녀들을 가르칠 큰 가방을 준비해서 출근 했던 것이 그 학교의 교감, 교장을 거쳐서 한국학교 동북부 지역협의회 회장까지 마쳤던 나의 생애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중심 속에 계신 선생님이 뉴저지 한국학교의 초대 교장 선생이신 김은자 선생님이시다. 뉴저지 한국학교는 북부 뉴저지 지역에서 1983년 1월 8일 216명의 학생과 12명의 교사로 개교한 학교이다.

개학식이 끝나고 교사 인터뷰가 시작되는데 “국어는 자신이 있으나 영어를 잘못해서요”라고 한 나의 말에 “여기는 한국학교 입니다. 영어는 필요 없어요. 우리말만 잘 가르치면 됩니다.”라는 교장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에 자신감을 얻고 용기를 가졌던 그 때 일이 항상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김은자 교장 선생님은 경기여중과 정신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는데, 미국에서는 미 장로교 기독교대학원과 미 태평양 신학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마친 재원이시다.

이화여자대학 최초의 총장 김활란 박사와, 파키스탄 성공회 감독이 사석에서 파키스탄 모슬렘 지역에 기독교 복음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고 간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영향으로 3인(김은자, 전재옥, 조성자)중 1인으로 영어 교사가 되어 파키스탄에 첫발을 내딛었다. 몇 년간 영어 교사로 고생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South Carolina의 Summerville High School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그 친구의 숙부인 이규명이라는 청년 실업가를 만나 노처녀 노총각이 결혼하여 아름다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뉴저지 한국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도서관(현,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 대출부 주임으로 40여 년 동안 근무하였다. 그의 남편은 만두 공장을 운영하던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자식도 없이 남편만 의지하고 살던 그의 생애가 크게 흔들렸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그 직장에 복귀해서 나가는 그 교장 선생님을 보면서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소생시켜 주신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에게 맡기신 일이 아직 남아 있나 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