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맨하탄의 ‘조선황실 마지막 공주’

2014-06-27 (금)
크게 작게
김주앙<화가/ 패터슨>

지난해 뉴저지 KCC오픈강좌에서 들었던 고종황제의 다섯 번째 아들 ‘의친왕(이강)의 다섯 번째 딸 ‘이해경 공주(아들 딸 합쳐서 13번째)’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억한다.

1930년생 이해경 공주는 뉴욕 맨하탄에서 54년째 살고 있는 진짜 뉴요커이자 성악을 전공한 예술가이다. 30년 넘게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librarian)로 일 했으며, 은퇴 후 시니어 합창지도와 마지막 황실을 알리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는 한때 결혼할 뻔 했는데 어쩌다 독신으로 평생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혼할 수 있다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습은 아직도 단아하고 은은하며 아름다웠다.

그녀의 부친, ‘의친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의친왕 형제들은(영친왕, 순종, 덕혜옹주 등) 자녀들이 없거나 번창하지 못했으나 의친왕은 열 명 가까이 되는 부인에게서 22명의 자녀들을 생산했다. 그는 한량 중에 한량이었다. 일본은 의친왕을 골치아파할 정도였으니까.

강제로 일본으로 끌고 가면 일본 앞에선 ‘네, 네,’ 납작 엎드리고 저들이 좀 누그러질 만하면 다시 숨은 듯 조선으로 탈출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곤 했다. 그는 탈출하듯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김규식 박사 등 당시의 유학파들과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지하운동처럼 맹렬하게 했다. 그 기록들을 컬럼비아 도서관에서 김해경 공주가 사서로 일할 때 찾아냈다. 공주는 평소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과 반감이 많았었는데 의친왕의 기록을 통해 부친과 화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 구황실의 배경’ ‘일제시대의 3대궁’(창덕궁, 운현궁, 사동궁) ‘황실의 생활’ ‘의복, 음식, 법도’ 등등 비록 주어진 시간 때문에 자세하게는 아니라 해도 김해경 공주의 생생한 증언은 듣는 이에게 감동이고 감격이었다.

이해경 공주는 저서 ‘나의 아버지 의친왕(My Father Uichin)’을 출간, 미국 내 2~3세들에게 마지막 황실을 알렸다. 이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근 현대사가 아니겠는가.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묵상하게 되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공주의 이야기는 내 블로그(http//jooangegloos.com)에도 올려져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