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명 87호 선장의 ‘선택’

2014-06-27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지난 4월 승객 수백 명을 내버려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세계인을 분노케 했다. 이와 반대로 보트 피플 96명을 구조한 뒤 자신의 후반부 인생은 바닥으로 떨어진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가 최근 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이라는 분을 아십니까?’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달되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1985년 참치 잡이 원양어선 광명 87호는 1년 동안 인도양에서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11월 14일 오후 5시경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전재용 선장은 목선을 타고 SOS를 외치는 보트 피플을 발견했다. 전쟁에 지며 공산화가 된 월남을 탈출한 난민들로 인접국의 입국 거부와 강제송환 등으로 국제적인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회사에 알렸으나 ‘관여치 말라’는 회사의 지침을 받고 400톤급의 큰 배를 몰아 부산항으로 운항하다가 그들을 구하고자 뱃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보트피플 대표 피터 누엔은 25척의 배가 그냥 지나가고 26번째 광명 87호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다들 10일 동안 굶주린 상태였다고 했다. 전 선장은 부산까지 가는 14일 동안 그들을 먹이고 재워주었다.

노약자와 여자들에게 선원들 침실을 내주고 병든 사람은 선장실에서 치료해 주며 25명의 선원들 식사를 96명과 함께 나눠먹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잡은 참치가 많다, 여러분은 안전하다”며 난민들을 위로해 주었다.

난민 96명은 부산항에 무사히 입항하여 1년 동안 수용소에 있다가 미국, 호주, 뉴질랜드, 영국으로 모두 떠났다. 그러나 선장인 그는 입항 즉시 해고 통지를 받았고 여러 선박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정부 당국의 조사까지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고향 통영으로 내려가 멍게 양식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미국으로 간 난민들은 생활이 안정되자 생명의 은인을 수소문 했고 드디어 2004년 전재용 선장을 미국 LA로 초청했다. 소문을 들은 베트남인들도 공항에 달려오고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든 가운데 난민들은 그를 부둥켜안고 “사랑합니다, 미국으로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외쳤다.

캘리포니아에서 의료기사로 일하는 피터 누엔 등은 난민을 위해 일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UN 난센상(Nansen Award) 후보로 전재용 선장을 추천했다.
‘망망대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뱃머리를 돌릴 때 나의 미래와 경력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전재용 선장의 실화를 담아 2009년 10월에 방영된 KBS-TV 스페셜 프로 ‘어떤 인연’ 이 5년 후인 최근,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세월호에 실망한 한국인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선장이 있었구나’ 감사하게 되고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오늘날 이 모든 것이 희귀한 시대가 되다보니 그의 선택은 더욱 놀랍다. 순간의 선택으로 자신의 밥줄이 끊어지고 고난의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는 ‘96명의 생명을 구한 일을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위대한 선택이 되었다.

전재용 선장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니 그렇게 크게 말고, 작게나마 위기에 처한 이를 도와준 적이 있는 가 반성하게 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피하거나 옆으로 돌아가며 비겁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자반고등어 뒤집듯 자신의 소신이나 원칙을 기회에 따라 번복하며 편한 것만 찾아서 살아온 것은 아닌가, 귀찮고 번거롭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잘잘못을 알면서도 옳은 것을 주장하지 않고 넘어간 적은 없는 지 돌아보자.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지만 드물게 그런 사람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재용 선장의 선택이 진정 강하고 용기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